14일 차> 선릉역 사고

stan getz & bill evans - but beautiful

by 도미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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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항상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목에 하얀 천이 둘러져있었다. 분명 교통사고가 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테헤란로의 정중앙이자 강남역과 삼성역 사이의 이 사거리는 유독 길도 자주 막힐뿐더러 꼬리물기도 빈번하게 발생을 해서 늘 번잡스럽다. 자동차 클락션 소리는 항상 울려대고, 퇴근시간이고 뭐고 항상 막히는 길이다. 점심을 먹을 때, 출근할 때 항상 지나 치는 곳이기에 낯선 곳이 아니다. 응급차와 경찰차들이 사고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에 대리운전을 하기 전 날씨도 살필 겸 교통 상황도 살필 겸 인터넷 서칭을 하고 있었는데, 선릉역 사고 영상이라며 동영상이 떠돌고 있었다. 덤프트럭 앞의 오토바이가 트럭 아래로 들어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영상이었다. 아까 사거리에서 봤던 장소였고, 분명 그 흰 천은 사망자의 시체였던 것 같다. 신호를 기다리던 트럭 앞으로 오토바이가 끼어들었고, 트럭 운전자는 앞으로 끼어들기를 한 오토바이를 보지 못하고 출발을 했던 모양이다. 신호만 보고 출발한 트럭 기사는 오토바이를 발견하지 못했고, 동시에 또는 먼저 출발하지 못했던 오토바이 기사가 트럭 아래로 깔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강남은 그야말로 배달 전쟁이라고 한다. 안전주행은 당연하고, 속도 경쟁을 부추기는 배달앱 운영 방식을 손봐야 할 것이다. 현재 배달앱은 속도 경쟁 중이다. 한 집만 배달하는 단건 배달에 쿠팡 이츠가 나서자 배달의 민족도 단건 배달 서비스인 배민원을 론칭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주문한 음식을 20분 내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라이더들은 여러 주문을 묶어가는 묶음 배달보다 줄어든 건수를 채우기 위해 더 빨리 더 많이 배달에 나서야 한다. 자기 생명을 갉아먹으며 급하게 달리는 것이다. 자동차 사이를 뚫고 횡단보도 앞에 서며 휴대전화와 신호를 번갈아 보는 이유에는 플랫폼사 간 속도 경쟁이 있다는 소리다. 물론 나도 대리 운전을 하면서 자주 불쑥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신호위반은 물론 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화가 날 때도 많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할 때면 라이더 스스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안전교육이나 노동권익 그리고 업체의 수익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이 존중되면서 수익창출을 하는 식의 방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제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업체 간의 공정한 경쟁을 펼쳐야지, 라이더들을 앞 세워 단순한 플랫폼으로서 수익 챙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 업체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대리운전도 마찬가지다. 20프로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플랫폼 업체가 기사들에게 지원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 자비로 보험에 가입하고, 운전부터 애프터서비스까지 오로지 기사의 몫이다. 물론 가끔 기사들 중에도 욕먹을만한 짓을 벌이는 기사들도 많지만, 그런 기사들을 욕하기 앞서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상과 벌로 통제 및 관리를 해야 함이 회사를 위해서도, 기사들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사거리 인근에는 오토바이와 함께 꽃이 함께 놓였다. 소주도 보였고, 누군가 향도 피워놓았다. 기사를 통해 보니,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40대 남성의 사고였다. 직장을 잃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의 선택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일을 안 할 순 없었을 것이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배달 라이더 일로 빠듯하게 살았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단상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라고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이제 끝났으니 평안히 쉬시길 바란다.

더불어 현재 살아있는 몇십만 명이 될지 모르는 배달기사들... 그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도로 위의 무법자로 낙인찍힌 채 1~2만 원짜리 음식 봉지를 들고 오늘도 뛰고 있다.

욕은 우라질 나게 들으면서......

사회는 이들을 뼈가 으스러지도록 이용하고 또 필요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천대하고, 한쪽에서는 욕을 한다.

부디 저를 포함해 의지할 데라고는 오토바이 안장뿐인 이들에게 각자 한 분 한 분 몸과 마음을 지켜주시고 밑바닥 우리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십사 기도드린다."








역시 사람은 그 입장이 되지 않고는 제대로 그 상황을 알지 못한다. 무조건 라이더가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해선 안된다.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다. 누군가는 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을 욕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게 만든 업체와 사회를 탓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번 정도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 같다. 그날 대리 운전을 하는 내내 3건의 교통사고를 직접 목격했다. 사고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마 대부분의 우리들은 "저 차들 때문에 길이 막혔네", "그러게 저기서 왜 끼어들어서는 이 난리야", "과실이 80 : 20은 나오겠어"라고 말할 것이다. 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는 내 귀에도 차량 소유주들은 그렇게 말을 했다. "운전을 못하면 차를 왜 끌고 나오는 거야.", 라던가 앞쪽의 고급차에 접촉사고를 낸 뒤쪽의 소형차를 보며 " 야 돈 꽤나 깨지겠는데."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만일 본인이 저 사고의 중심에 있다면 그런 말이 나올까 싶다.

운전하는 내내 평소보다 더욱 집중을 하며 운전을 했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손님을 조심스레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나도 선릉역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도 있었겠구나 싶은 생각에 무서웠다. 증권사 직원이 투잡으로 대리운전을 하다 명을 달리 한 사건은 얼마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가는 연민의 대상으로 가끔은 국회의원들의 발의 법에 입을 올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사라지겠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사회에서 쏘아붙이는 눈총에 맘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숨죽여 울겠지. 여기저기 위로하고 슬퍼하겠지만, 결국은 당사자는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남은 가족들은 더욱 힘들어지는 참혹한 현실에 더욱 슬퍼지겠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가져다준 대리운전이지만, 오래 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 생각했다. 나름의 좋은 점을 찾아가며 투잡의 정당성을 합리화시켰지만, 가능한 상황이라면 빨리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가족을 위한 일이 반대로 나와 가족 눈에 눈물 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내가 당사자였다면이라는 가정도 하고 싶지 않은 슬픈 일이지만, 사고 당사자를 위로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늘도 난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나를 속이며 대리운전을 하러 나간다. 현실적으론 조심하는 수밖엔 없다. 그렇게 오늘도 난 오늘도 콜을 잡으러 선릉역 사거리로 나간다. 아이러니하게 귀에 울려퍼지는 stan getz & bill evans의 연주가 아름답게 한편으로는 슬프게 나즈막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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