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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Dec 26. 2021

정신과 차마 못 가고 아래층 내과를 갔다

왜 난  퇴사를 하지 못할까

일어나면 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아팠다. 정신이 너덜너덜해져서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도 괴로워서 택시를 잡아 탔는데, 그날은 외근 나갔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병원을 찾았다. 상담이 필요해

그때가 28살이었는데 친척 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 기록이 남아 나중에 이슈가 될지를 물었다. 내가 잘못됨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도 정의되고 싶지 않았던 건가? 답변은 기억이 안 나고 일단 잠실역과 송파역 주변을 걸으며 보니 꽤 정신과 정신상담 등등의 간판이 많이 보였다.


그날도 아침에 아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타의로 출근을 안 했으면 하고 간절하게 기도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층에 정신과 상담이 있길래 건물에 들어가는데 차마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 2층 내과에 들어갔다. 

출근길 (출처:unsplash)

진료를 받으려고 의자에 앉으니 선생님이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는다

"선생님 ㅇㄹ 흐긩 흐긓ㄱ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그리고 숨도 잘 안 쉬어지고 힘들어요 "

폭포수처럼 분출하며 으앙 풀었더니 선생님이 스트레스라고 하셨다. 신경안정제 약이 있는데 처방해주겠다 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정신과에 가려다가 무서워서 여기 왔다고 하니 보통 그곳에서 주는 약보다 더 함량도 낮으니 일단 일주일 먹어보라고 하셨다.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집으로 왔다. 동기들도 잠을 못 자고 친구도 신경안정제를 먹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나도 먹는구나 싶었다. 약을 먹고 또 울면서 잠들었다. 그리고 지금 7년이 흘러 글을 쓰고 있다.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힘들다고 말을 하면 대기업 쉽게 들어가는 줄 아느냐 저가 쉽게 얻은 기회라 쉽게 생각한다. 퇴사하면 뭐할 건데 그만한 직업이 있냐 너는 왜 또 그걸 참지 못해서 그러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이란 건 그저 말이다. 타인의 입에서 흘러들어온 말을 흘려들으면 되는 게 그러지 못하고 그 말을 엮어 스스로 목을 달아 간당간당하게 하루를 지냈었다. 나는 팀장님도 문제라고 했다. 폭탄기처럼 일을 주고 실수하는 것을 다 잡아내어 소리 지르고 술 사주는 게 자기 위안하는 거라 생각했다. 옆에 분은 왜 명품을 안 사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그거 가지고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며 하루 종일 온 마음을 다해 욕했다. 내가 그들을 내 인생에서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들린다고 말이 아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말만 주어서 넣으면 된다


내가 선택한 시간이다. 누군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위압적으로 말을 하니 듣고 마음으로 괴로워한 건 나다. 돌이 굴러가서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난 건데, 그릇이 작으니 종지 그릇만 한 이야기를 한 건데 그걸 붙잡고 아니 왜 그딴 소릴 하는 건데 하며 괴로워한 거다. 간장종지야 왜 넌 국을 더 담아내지 못하냐며 그럼 종지 잘못일까 화내고 있는 내 잘 못 일까? 사람들은 나를 틀 안에 가두려고 한다고 불만을 품었지만 그 말을 듣고 틀에 꾸역꾸역 들어간 건 나다. 그 누구도 퇴사하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한 것도 아니다. 다녔던 것도 짓눌린 시간에 나를 둔 것도 다 나다.


남 탓하는 기생이다. 부장님 때문에 획일적인 일처리 방식이, 효율 제로의 서류 작업들이 문제라고 했지만 그곳에 머물면서 눌어붙어 산 기생 같은 삶이다. 퇴사 단어로 산지 6개월 만에 결국 퇴사했다.  그 뒤 스타트업도 가보고 이제는 혼자서 프리 워커로 일해보겠다고 사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말은 많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틀을 들이 내미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이제는 내가 좋아했던 유튜버들도 30대에 알았어야하는 것들, 20대엔 어떻게 해야 한다며 넘치는 조회수로 증명하듯 말하니 조바심마저 피곤하다


어떤 말주머니를 마음에 찰지만 정하면 된다. 어떤 말이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가


내과에서 울던 나는 이제 골라 듣는다. 내게 건강한 말 좋은 말을 더 많이 듣고 이제 두부도 한 모금 못 담는 간장종지를 가엽게도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벽지의 문양인 듯 아 간장종지구나 하고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말주머니에 조금씩 더 채워져 냄새나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내가 아는 거지 저 말에 상처 받기엔 내가 너무 귀엽고 소중하다는 걸. 그리고 빈틈없이 채우니 괜히 남을 미워하는 못된 마음자리 잡을 곳도 없다. 지독한 구렁 내가 나는 말은 꾹 참고 악마가 속삭이며 테스트하는 거라 상상하면 내 마음 입장에서 굳건해진다. 사랑하는 대일님과도 대화를 나누고 마음 쓰다듬어 주는 책들도 읽어가면서 가지고 있는 말 주머니에 건강한 말들 하나하나 주워 담는다.


이번 회사도 퇴사할 때 비빌 언덕 없이 혼자 사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정신 차리라는 눈빛을 받았지만 그건 벽지의 문양이요 나를 걱정해주시는 마음만 담아 주머니에 넣었다. 21년 6월부터는 미국에 와서 그리고 속을 긁어대던 모든 회사와도 안녕했다. 이제 나 혼자 하려니 남탓없이 스스로 해야 하는 새로운 챕터를 글을 쓰고 있다. 아 퇴사가 싫으니 정식 입사도 안 한다. 지금은 직업이 5개인데 6개인가 그니까 콘텐츠 마케터, 칼럼니스트, 마케팅 컨설팅, 강사, 교육회사 CMO 일을 하는데 출근을 안 한다. 내가 미국에 있어서기도 하고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곳에서 풀타임을 요청했을 때도 겸업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고 말씀드렸었다. 회사도 동의해주어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저번엔 뉴욕 여행하다가 집 앞에서 캠핑의자에서 일하다가 차에서도 일하다가 한다. 

타인의 욕심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머니 따땃하게 손에 쥐고 내가 선택하고 산다. 


그날 눈물에 떠밀려 짓눌려 살던 내가 다 울고 무릎 툭툭 정리하고 일어나 하나씩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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