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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단하는 킴제이 May 22. 2022

꽉 채워 산 하루

프리랜서의 땀내 나는 프로필 사진

따릉이를 따고 합정역을 휘젓는데 옷가게가 안 보인다. 아침부터 달려 강의를 하고 홍대에서 미팅을 하다가 자료를 만들었는데, 저녁 6시 스튜디오 예약에 맞춰서 집에서 옷을 가져오려다가 시간이 빠듯했다.

점심도 못 먹고 동사경 스태프 분들이 챙겨주신 바나나 초코파이와 두유를 먹으며 뛰었고 홍대 미팅할 때는 카페에서 차를 사주신다는 걸 빵 하나 얻어먹었다. 머리도 아프고 땀냄새가 나는 것 같아 거슬린다.


취소할까 확진되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만들까 하면서도 레미가 선물해준 촬영권이라서 그럴 순 없었고 거짓말을 할 용기도 안 났다. 셔츠라도 입고 찍고 싶어 합정역에서 옷가게를 둘러보는데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어도 바쁜 하루에 쫓겨 마음에 여유가 없다. 일단 진정 좀 하고 들어가자. 짐이 많은 에코백을 양속에 아이 안듯 치켜들고 1층에 서 있다가 2층 스튜디오를 올라갔다.


시현하다 합정역 스튜디오


다들 멋진 색감을 뽐내며 머리도 개성 넘치게 하는데 나는 어째..

매장에 있는 고대기를 써도 더 어색해져서 마구 비벼대고 소파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다. 촬영할 때 땀내가 날까 봐 신경 쓰이고 죄송했다. 앞 촬영이 길어졌는지 10분 정도 늦게 촬영이 시작되었는데, 노을 작가님께서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세팅해주시고 (활기찬, 세련된, 발랄한, 따뜻한) 내 웃음을 꽉 쥐어 놓치지 않으신다.

살짝 웃으실게요! 조금만 더! 이번엔 활짝! 아 너무 예뻐요! 경쾌하게 춤추듯 촬영해주시니까 민망할 틈도 없이 웃어재낀다. 노을 작가님방으로 가서 사진을 골랐다


"저는 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제가 많이 변했어요. 모든 사람이 다 예쁘더라고요.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작은 모든 하나하나를 꼭 칭찬해드려야겠다 생각했어요. 진짜 사람이 다 예뻐요. 정은님도 아 이것 좀 보세요. 미소가 정말 예뻐요."


모니터로 내 사진을 보는데 내가 활짝 웃고 있다. 아침부터 강의와 미팅으로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휘젓던 내가 근사하게 행복하게 웃는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킴제이 덕분에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꼭 보세요

노을 작가님의 말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산 내가 예뻐 보이기도 했고 내게 멋지다고 맨날 말해주는 레미와 엄마가 생각이 났다. 레미는 미국에 떠나기 전에 자기 강의에 날 초대했었다. 킴제이 덕분에 자기가 이렇게 강의하는데 얼마나 성장했는데 제이가 어떤 사람인지 꼭 봐야 한다며 동대문구 인플언서 대상으로 하는 클래스에 나를 데려갔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레미의 그릇이 참 멋졌고 내 인생에서 누군가가 감사함으로 나를 응원해준다는 것이 벅찼다. 그 레미가 이번에 꼭 내 모습을 남기고 가라며 시현하다에 덜컥 결제를 하고서는 나한테 꼭 찍으라며 연락이 왔었다. 레미 선물 덕에 모니터에서 비친 내가 사람들 덕분에 풍요로워졌다.



최선을 다한 그 모습이 더 예쁘지

대학교 4학년 디자인과 작업실 청소 날과 졸업 사진 촬영 날이 겹쳤다. 졸업 전시회를 마치고 난 뒤라서 1년간 썩어 문 들어지고 밤새 닝 기적 거렸던 잠 냄새가 쌓인 작업을 청소했다. 오전 10시부터 모여 다 같이 치우고 오후 4시면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럼 1시에는 메이크업도 예쁘게 받고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청소를 하는데 끝나지가 않는다. 1시가 넘어 2시가 되니까 친구들이 예약시간이 돼서 어쩔 수 없다며 하나둘씩 민망해하며 떠났다. 4학년 2학기 과대가 되었던 바람에 떠날 수가 없었다. 오빠들이랑 조금 더 정리하다가 나도 미용실 갈게 하고 보내는데 점점 일손이 부족해지니까 속도가 나질 않았다. 결국 나는 화장을 받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챙겨 온 옷을 입고 직접 머리도 하고 아이라인도 그렸다. 촬영하러 가는데 친구들의 뽀얀 얼굴을 보니까 울컥 속상하기도 했지만 다 같이 멋지게 차려입고 찍으니까 우리가 어른이 된 것 같아 즐거웠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진짜 속상해. 다들 메이크업받고 왔는데 나는 땀에 절어서 청소하느라고 받지도 못했어.."

"그래? 속상했겠다. 그래도 화장한 모습보다 끝까지  할 일을 해낸 모습을 사람들은 더 멋지게 기억할 거야. 남는건 그거지"


엄마 말을 듣고 마음이 풀려 울었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차곡히 쌓여서 마음이 괴롭고 선택 앞에서 두려울 때 더 멋진 나로 남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택하는 힘이 되어준다. 지금까지



노을 작가님의 사진을 보니 오늘의 최선을 다해 땀내 나는 하루를 산 내가 너무나 멋지다. 퇴사를 하고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마음을 쥐어뜯으며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해봤더니 하나씩 나만의 마을이 세워져가고 있다. 한국 와서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현실화되면서 바쁘고 즐겁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 미소를 보니까  지금 이게 맞다는 확신이 마음에 꽉 차올라 눈물이 샌다.


나의 땀내 나는 하루를 기록해준 레미 정말 고맙고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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