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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Sep 13. 2022

내 밥그릇을 누가 쥐고 있는가?

2000년에 나는 홋카이도 어느 리조트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중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이랬다. IMF였고 사회곳곳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은행이 망하고, 회사를 물건처럼 사고팔고하는 것도 이때 부터다. 많은 사람이 정리해고 당했지만, 한편에서는 연봉을 수십억 받는 사람도 한국에 생겨났다. 


골프가 대중화 되었고, 해외여행이 자리 잡으면서 가까운 일본으로 많이 골프 치러 갔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오후에 티오프할 수 있고, 음식도 입에 맞고 가격도 저렴하다. 


혼란스러운 와중이었지만 해외로 골프 치러 오는 사람은 혼란의 갈림길에서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탄 사람들이다. 손님중에는 대기업 임원이 많았고, 개인 사업자, 영화배우, 대학교수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그 찰나의 만남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뀐 것 같다. 그 여손님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손에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3박4일 일정동안 계속 그 책을 손에 쥐고 있었고, 가끔 눈이 피로하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근데 눈빛이 약에 취한듯한 몽롱한 분위기였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메모해 두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책을 찾아보았고, 저자는 구본형이라는 사람인데 IBM에서 20년간 근무하고 회사를 나와 1인 기업가로 활동중이었다. 요즘에야 책내고 강연하는 사업자가 많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비지니스 모델이었다.


책을 읽고 가슴이 타오르는 경험은 처음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도 일본에서 만난 그 여손님처럼 약간 맛이 간 눈빛을 했을 것이다. 그 책은 참 매혹적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자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얼추 50이 되면 누구나 자연인이 된다. 굳이 숲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자연인이다. 회사를 나오기 때문이다. 자연인은 자급자족한다. 스스로 집 짓고, 스스로 먹거리를 준비하고, 스스로 요리한다.  회사원과 자연인의 차이점은 '밥그릇을 누가 쥐고 있느냐'다. 회사원의 밥그릇은 회사가 쥐고 있다. 언제든지 뺏어갈 수 있다. 내 밥그릇의 주도권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쥐고 있다는 것은 불안하고, 불쾌한 일이다. 


구본형 사상의 핵심은 '내 밥, 내 손으로 먹자'는 것이고, 그 수단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찾을까? 몇가지 싸인이 있는데, 가장 큰 시그널은 '좋아함'이다. 


나는 책을 읽고 홈페이지를 찾았다. 당시 공병호 선생도 비슷한 분야였다. 자기계발 시장의 선두자로서 '구공 클럽'이라고도 했다. 성격은 전혀 틀리다. 공병호가 경제적이라면, 구본형은 낭만적이다. 생뚱맞게도 제자를 모집하고 있었고, 나도 지원했다. 


그렇게 연구원 생활을 했고, 함께 모인 사람의 면면을 보니 많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분명한 것은 만날 일 없을 사람들을 그 모임을 통해서 많이 만났다. 


공통점은 모두 회사 생활을 싫어한다. 하루하루 회사 다니는 것이 고역인데, 월급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분이어서 영혼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구본형 선생님의 모델을 자기도 따르고 싶어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고 싶어했다. 


시간이 지나자 쭈뼛쭈뼛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기끼리 만날때마다 회사원이 줄었고, 퇴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에 자극받아서 좀더 회사를 다녀도 되는 사람도 낼름 나와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의 배우자들은 이 모임을 아주 싫어한다. 언젠가 선생님은 당신은 신비주의자도 아니고, 퇴사 권유자도 아니라고 했다. 충분히 준비를 하고 나와야 한다고 했지만, 제자들의 퇴사는 이어졌다. 퇴사는 두렵지만, 내 인생을 산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고 있다. 회사를 나오고, 책 쓰고, 강연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매년 책이 순풍순풍 나오는 것은 미스터리다. 그렇게 나온 책 중 한 권의 서문을 읽었다. 20년 전 구본형 책을 읽을 때와 똑같이, 가슴이 타들어갔다. 이 불꽃, 이게 사는 맛이지. 


이제 반半을 살았다. 전반전에 내 마음은 꾸준히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내가 다른 방향으로 갈려고 할수록(맹목적인 돈벌이) 더 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바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모른척 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 방향대로 가지 않으면, 그 콜링은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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