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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대문 김사장 Sep 20. 2022

호르몬 이야기.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내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많이 망가지셨다'고 한다. 서글펐다. 나름 꽃미남이었고 몇명 안되지만 나를 사이에 두고 여인들이 다투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풀이 죽어있는데, 아내는 '품위 유지비'로 돈을 주셨다. 이 돈으로 무얼할까?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남성 갱년기, 비뇨기과 영상이 뜬 것도 그때다. 남자도 갱년기를 겪는다. 30대 부터 호르몬이 줄고 40대가 되면 무기력하고 이유없는 짜증이 난다. 아무도 관심 안가져주니까, 셀프로 추스리고, 셀프로 북돋운다. 


찾아보니 비뇨기과 엄청 많다. 겁이 많아서일까? 난 이런 활동에 적극적이다. 지하철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 군인이 앉아있었다. 엉덩이 빵빵한 코리안 아미korean amry다. 허벅지가 튼실해보였다. 저 안에는 작은 슈퍼맨들이 자글자글 모여있을 것 같다. 깊은 절망에도 찌그러지지 않고,무엇을 해도 일취월장하는 힘이 저 허벅지에 모여있다. 누구에게나 딱 한번 주어지는 인생의 기회다. 얄궂게도 저 나이때는 그걸 모른다. 


근육이 뭉텅이로 빠지고, 머리숱이 가늘어지고,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면 내 슈퍼맨들이 모두 날아가고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서글퍼지면서 마음이 쉼없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딴딴하게 영혼의 시드머니를 만들고 싶은데, 잘 안된다.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절박감, 위기의식, 할수 있다는 집념, 이제 피곤하다. 


비뇨기과 선생님은 S대 출신. 모발이 풍성했고 목소리는 낮았지만 짱짱했다. 나는 대인 관계 없고, 술 담배 안하는 생활을 스스로 히키코모리 같다고 생각해왔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높이 평가해 주셨다. 특히 하루에 한시간 운동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고, 될수 있으면 자연을 보며 달리기나 등산을 해보라고 했다. 


호르몬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서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 사이 유튜브를 보았는데, 알고리즘의 농간인지 또 비뇨기과 영상이 떴다. 도대체 구글은 내 호르몬 수치를 어떻게 아는걸까? 


운동 많이 하고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어도 밭이 좋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말이었다. 밭이 좋으면 농작물이 잘 자란다. 테스토테론 같은 호르몬이 풍성하면 약간만 운동해도 큰 효과 얻는다고 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보충 할 수 있는 방법과 약이 많다. 가격과 사용 빈도를 이야기해 주셨다. 근력이 발달해서 무거운 무게를 들고, 골프 칠때 공이 멀리 나갈 것이라고 했다. 눈이 밝아지고, 기억력까지 좋아진다. 이걸 왜 여태 몰랐지? 


병원 다녀오고 2주 정도 지났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주사로 맞는 건강식품? 


눈에 좋은 금잔화 차, 단백질 보충해주는 양태반, 홍삼정, 헬쓰 PT, 품위 유지비로 이런 것들 구입했다. 생각해 보니 내 나이때 아버지 모습과 똑같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건강식품들. 거울보며 몇번 운동하고, 헐크 표정 지었던 아버지 모습. 


근력이 가장家長으로서 생활비를 만들어내는 동력이라면, 건강식품과 민간요법은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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