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하지 못했던 마음
일어나려고 아침에 몸을 뒤척이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시간을 벌어보려는 찰나,
허리의 뻐근함과 동시에 물 찬 풍선인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다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느낌이지?
이게 정상인 건가? 하는 순간..
떠오른 수술실의 냉기..
하반신 마취를 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마취가 되었을 때도 아직 정신은 온전하였고,
나무도막 다뤄지듯 느껴지는 시선을 온전히 감내하며 비몽사몽 한 내 몸이 놓인 이동 침대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이 완벽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그 순간 이후로 다리 전체의 에너지 장이 온전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여 다리 바깥쪽에서 희미한 연무처럼 흩어져있는 느낌..
어쩌면 나는 그 불안함을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여
흩어진 에너지 대신 부피감으로 그것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애써 다리를 힘을 줘가며 그렇게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며, 그 에너지를 내 다리 뼛속 깊이 가지고 들어와 본다.
튼튼하고 단단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 아침이었다.
더 이상 내가 내 다리를 희미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3년 전쯤, 사키코 선생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그동안 나는 내 다리를 무시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다리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참 오랫동안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이제는 다리와 함께하고 무시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침의 그 느낌은 그저 내가, 아직도 십여 년 전 수술실에서 당한 처우에 대한
불만인 줄 알았다. 싸늘한 시선들과 나무도막처럼 나를 이리저리 움직였던 그 순간들에 대한 분노인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새롭게 마주한 순간들..
알렉산더 테크닉 핸즈온을 받으며 마주한 순간들.
밥 선생님 레슨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왔던 그 움직임의 변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터져버린 울음은 다시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다시 수술실 아니 중환실에 서 있었다.
기도삽관을 한 채, 십여 개의 링거 줄이 뒤엉킨 채 꺼진 기계들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가 누워 있다.
그날 아침에 전화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직감을 하고 나는 마지막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액셀을 밟았다.
7시 무렵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렇다. 나는 임종을 함께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함께할 용기가 나지 않아 새벽 내내 꾸물럭 거렸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한 말은,
눈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짜증이었다.
"저 사람한테 붙어있는 저 기계들 호스들 좀 다 떼주세요."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에게 별 의미도 없는 그것들이 정말 눈에 거슬렸던 것인지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입관할 때까지 울지 않았다.
장례의 모든 절차를 내가 책임져야 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진행되는지 내가 다 알아야 했다. 나에게 또 다른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흔들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먼길 와준 문상객들이 고마웠고, 짧은 인연이었지만 팬의 장례식에 팬클럽과 와준 그녀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렇게 장례식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고,
나는 그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는..
그런데, 어제 나는 십여 년 전 그날의 그 순간과 다시 마주했다.
누워 있는 그를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그동안 고생했다며 이제 나는 괜찮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 손은 그의 다리부터 팔 어깨를 어루만지고,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을 지나 그의 뺨에서 미소 지으며 그를 보내줄 수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도 이젠 괜찮다고..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내 몸에 해왔던 일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중환자실로 내려가자마자, 기도삽관을 하던 그 순간의 고통..
밖에서 기다리는 나는 그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그 과정으로 그가 아플까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그 고통을 느끼고 싶어 했는지도..
그 고통을 내가 대신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보내고 1년도 안되어 그것과 비슷한 고문 같은 선택을 했었다.
그리고 하반신 마취를 했을 때의 그 느낌은..
신부전으로 누워있던 그의 다리를 봤을 때의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없기에 내가 그런 처지에 닿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은 그냥 한 순간에 다 들어와 버렸다.
이해하고 짜 맞추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모든 실타래에 풀린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내 몸에게 해 왔던 일들은
그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내가 더 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마땅히 그런 고통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여태 그 안에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정말,
그를 보낸 것 같다..
이젠 나도 그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