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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Aug 27. 2021

무의식과 만난 순간, 이해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분노가 많았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모를 화가 나 있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싸워야할 상황이 되면

싸움도 불사하는 천방지축 말광량이였다.


중학교 가면 얌전해 질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았다. 크게 싸움을 한번 해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오시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지만,


고등학교 가서는 야자를 땡땡이 치기도 하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며 부단히 속 썩이는 아이였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나?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할 만한 사람이라는 오만이 있었나?

아무튼 아주 유별난 사춘기를 보냈다.


IMF가 터지고,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오면서

사회에 나서는 성인이 되어서야 이성이란게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다행히 어릴적 신나게 놀아서 대학때는 좀 덜 놀았다.

사실 놀 수가 없었다. 등록금 마련하려고 안해 본 알바가 없으니까~

알바 이야기는 스무꼭지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뭉친 이십대를 보냈다.


그리고, 삼십대 시작에 아주 큰 일을 겪으면서 삶이란 걸 다시 보게 되었다.

정신차리라고 나에게 그런 일을 주셨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인 덕분일까?

사십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고관절의 움직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도대체 왜 그럴까를 엄청나게 고민한게 벌써 25년도 넘은 일이다.

안해본 것이 없고 안가본 병원이 없을만큼 내 인생 최대의 난제였다.


그날도 역시 잘 가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어떤 희미한 물체가 내 중심에 있었다.


어라? 저게 뭐야? 나 여잔데? 넌 뭐니?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성정체성을 혼돈하고 있나? 아니 내가 전생에 남자였나?

별의별 생각들이 다 올라왔다.

그러던 그때, '남자면 내가 힘을 가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나왔다.

학교도 들어가기전 성폭행을 당했던 그 때가..

당할 때는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를 만큼 어린나이였고, 그저 놀이인줄 알았다.

그러다 엄마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린 그 집에 안 보내졌다.

그냥 그게 다였다.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그리고 나중에 나는 그게 나쁜 일이었다는 걸 알았고,

내가 당한 일보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어쩌면 그일로 나는 계속, 내가 남자아이였다면.. 남자처럼 힘이 쎄면!

안 그랬을텐데하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남자아이였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취적이고 맏아들같은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책임감들은 어깨언저리에만 남아 있었는 줄 알았는데

어깨가 놓아지고 몸통 전체가 편안해지면서

드디어 그 무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고 이미 다 지난 일이라고

그러니 네 중심에 있는 그것은 이제 전혀 필요없다고.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고관절이 한번도 가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중심에 있는 원래의 내것이 제대로 자각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자각하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골반 전체가 들어오는데도 몇년이 걸렸다.

그리고 나서도 중심에 대한 자각이 정말 희미했었는데

이젠 그냥 원래 있었던 것 마냥 선명하다.


몸이란 게 뭔지, 무의식란 놈이 얼마나 깊숙이 붙어있었는지~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그 순간을 함께해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이젠 뭐든 다 괜찮지 않겠어? 하는 용기도 생긴다!


기쁘고 행복하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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