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라잎 May 10. 2021

01. 양가감정

아이를 키운다는 건 01화

"아우~~~~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18개월 된 딸아이가 요즘 동화 '양치기 소년'에 꽂혔다.

전자펜으로 동화책 표지를 찍으면 펜이 한 편의 동화를 들려주는데, '양치기 소년'을 처음 듣던 날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숨죽여 눈만 깜빡이며 듣고있다가, 결국 마을사람들이 양치기 소년이 또 거짓말을 하는줄 알고 늑대가 나타나도 도와주지 않아 늑대가 양들을 다 먹어버리는 엔딩을 듣고는 "으이이이이" 소리를 내며 무섭다고 달려와 안겼다.


그 이후로는 그 전자펜으로 동작하는 책을 가리키며 괜히 "으이이잉" 다소 과장한 무서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내가 "뭐가 무서워~ 그냥 이야기인데. 하나도 안무서운거야~"라고 태연한 반응을 보이면 그 때서야 안심한듯한 표정으로 

"아우~~~~" 

이렇게 늑대 소리를 따라하거나, 

"음메에에, 음메에에" 

양들이 잡아먹힐 때 내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에게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너무나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그만큼 재미있다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알고 나서 부터 괜히 그 전자펜 책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손가락으로 멀찌감히 떨어져있는 책을 가리키며 양 팔로 자기 몸통을 스스로 감싸안고 눈썹은 갈매기 모양을 한 채,

"엄마! 흐잉 히잉"

이렇게 무섭다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내가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무서워? 그럼 다른거 들을까?"하면 "응!" 하며 책을 펼친다.

그리고는 전자펜을 들고 다른 책 표지를 찍으려고 하는데, 펜을 든 아이의 손은 무슨 일인지 자꾸 양치기 소년  책 표지 쪽으로 끌어당겨진다. 아이는 고민되는듯 손을 애써 다른 책 표지 쪽으로 끌고 가보지만, 이내 다른 책을 찍지 못하고 다시 양치기 소년 책 근처로 돌아온다. 


아이의 귀여운 방황을 끝내주고자 나는

"우리 양치기 소년 들을까?"

그러면 아이는 또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흐이흐잉"

하며 또 무섭다고 갈매기 눈썹을 한다.


무섭지만 궁금하고 두렵지만 가까이 가고 싶은,

아이에게서 발견하는 이 적나라한 양가 감정.


양가 감정은 사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일테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양가 감정을 갖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마침내 회피하려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며 모든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갖는 대표적인 양가 감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데, 바로 "아 너무 힘들어 좀 벗어나고 싶다""아 정말이지 세상 끝까지 행복하다"이다.

아이를 키우며 이전에는 느껴본적 없던 저세상의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나 고되고 힘들어 잠시나마 이 육아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내 아이의 얼굴과 웃음과 그 사랑스러운 몸짓에, 순간순간 나타나는 기특한 성장에 끝도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런 양 극단의 감정이 교차로 찾아올 때면 나는 힘든 몸보다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 어떻게 이렇게 천사같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하며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 갖는 양가 감정이 우습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듯, 내가 갖는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를 돌보다 간혹 육아에 지쳐 '힘들다',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차책하고 있다면,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싫고 무섭지만 자꾸만 들으려고 하는 천사같은 아이를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두 가지 반대되는 감정은 매우 본능적이고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아이처럼, 그리고 아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양가 감정을 느끼며 함께 자란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깨닫고 위로를 받는 과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하면 성공하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