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화) 걱정은 지나가고 축복만이 가득했다

by 사고 뭉치

세차게 퍼붓던 비는 오후가 되어도 잦아들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요며칠 달궈진 대지를 가라앉힐 단비 정도를 원했건만, 간밤에는 한참 동안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비바람이 잠을 설치게 했다. 한마디로 야속한 비바람이었다. 일기예보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그 두 사람에게 오늘 하루만큼은 촉촉한 비라 할지라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가지의 현상을 놓고도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다.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결혼을 하루 앞둔 예비 신랑과 신부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밤새 그렇게 마음을 졸이게 하던 비는 결혼식 당일이 되자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그저 하늘만 잔뜩 찌푸렸다. 화창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어제 하늘의 거침없었던 진노를 감안하면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예식장 홀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신랑의 표정을 보니 마음 고생한 흔적이 느껴졌다. 왜 아니겠는가. 신부 대기실에 있던 오늘의 주인공도 다소 지쳐 보였다. 나도 결혼했을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신경이 한창 예민했기에 그 당시 모든 상황들이 아직도 기억의 바다에 떠있다. 생각하기에도 아찔하지만, 어제와 같은 상황이 오늘까지 이어졌다면 적어도 예비부부와 일가친척은 하늘을 평생 원망했을지 모른다. 이 정도 선에서 하늘이 그들의 간절한 소원과 극적 타협한 것이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페이지가 된 셈이다. 하객인 나에게도 얘깃거리로 오래 남을 이유가 되었고 말이다.

예비부부가 이 곳 예식장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는 신랑 신부 행진으로 마무리할 때, 예식장의 천장이 열리면서 오색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는 연출이 가능해서였다. 하지만 비가 오면 지붕 개방은 당연히 불가했다. 예비 신랑은 어제도 근무 시간 중에 창밖의 폭우를 내다보며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예비 신랑을 보고 있자니 새삼 하늘이 무심하게 보였다.

약 5년 전, 우리 회사는 구직자 채용을 위해 용인 미르 스타디움에서 개최한 창업 박람회에 참가했다. 당시 예비 신랑은 우리 회사 부스에서 현장 면접을 통해 채용된 직원이었다. 그때 지금의 예비 신부도 신랑과 함께 와서 알게 되었고, 이후로도 몇 번의 가족 동반 회식의 기회가 있어서 두 사람 모두는 나와 친한 사이가 되었다.

결혼식은 잘 진행되었다. 내가 신랑신부의 가족도 아니고 부모는 더더군다나 아닌데도 우리 회사 직원이 이렇게 또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내가 더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신랑의 친구 중에 우리 회사로 입사한 직원이 있는데, 요즘 MZ 세대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결혼식 전날, 그 직원은 준비한 축사를 테블릿에 저장하는 대신 내 컴퓨터에서 종이로 출력했다. 내 노트북 화면에 원본이 남아 있어서 본의 아니게 읽게 되었다.

문장은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여러 번 연습을 거듭했었는지 보면대 위에 올려놓은 종이에는 구김이 있었다. 오늘 현장에서 낭독하는 것을 직접 들었을 때는 더한 감동이 밀려왔다. 중ㆍ고등학교, 군대, 그리고 우리 회사까지 같이 근무하게 된 인연이 놀랍기도 했지만, 평소 회사에서도 느껴지는 그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하객들은 모든 예식 과정에 마음 고생했을 신혼부부에게 큰 박수로 힘을 보태 주었다.

드디어 지붕이 열리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오색 풍선을 보며 오늘까지 마음 졸이던 내 마음도 풍선에 띄워 날려 보냈다. 이 정도 날씨라도 허락해 주어서 하늘에 감사함을 표하듯이 말이다. 모든 게 기적처럼 다행이었고, 모든 게 잘 마무리 되었다. (25년 6월 21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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