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적어도 영업을 한다는 내 성격에 대하여

by 사고 뭉치

“대표님,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지금 주문하면 다음 주 금요일 전에 꼭 받을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발주 후 2주일이 베스트 일정이에요. 다음 주에 납품해 드리는 건 대통령이 와도 절대 안 돼요.”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잘 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종 급진적인 단어나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통화를 마치곤 “요놈의 주둥이”라고 속으로 삭이며 후회 모드가 되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냉봉투를 우리에게 무척 많이 주문하는 거래처의 전화였다. 요즘 같이 땅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불경기에 그런 발주가 단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는 그냥 숨 한번 고르고 고분고분 응대해야만 마땅했다. 그걸 절대 모르는 바가 아닌데도 그 순간엔 그랬다.


이번 여름, 그 업체 덕분에 증가한 우리 회사 매출만큼이나 나도 이래저래 시달려야만 했다. 반면에 그 담당자도 나의 이런 반복되는 울퉁불퉁한 언사에 상처 받았을지 모른다. 몇 번 나를 겪어본 업체의 그 담당자분도 이제 내 성격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의 음성은 급하다는 일정과는 달리 그때마다 차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침착함 때문에 내 화는 슬슬 머리에서 김으로 피어올랐다. 나도 그분의 그런 스타일을 이미 간파했지만 나는 왠지 하수 같이 대응하고 말았다. 3,500개가 넘는 업체의 대부분은 그래도 신사적이다. 하지만, 납기에 있어서만큼은 서로가 무척 예민해질 때가 많다.


성격 급하기로 따지자면 나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추진력이 강하고 일처리를 빨리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사업에 있어서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소양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고 하니 조금은 느긋해진 면도 없지 않은데, 내 부아가 치미는 것은 자꾸만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그들의 요구가 밉살맞은 데 있다. 납기의 철칙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의 거래를 통해서도 그들도 알고 있는 점이고, 누누이 내가 강조했기 때문이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길 간다.’ 뭐 그런 식인가 하는 마음으로 불편하다.


납기를 서두르면 공장 입장에서는 유무형의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어디 하나 여유 있는 거래처는 없다. 편의를 봐주다보면 다른 선의의 피해 업체가 생기고 우리 공장의 생산 원료도 억지로 교체하면서 발생하는 손실도 심각해진다. 이를 맡아 생산하는 현장 직원들도 혼선이 생겨 불만이 쌓인다. 사실 이런 기술자들의 동요 문제가 제일 골치 아픈 점이다. 서두르면 독촉한 업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생산 완수라는 갑작스레 생긴 목표를 향해서 무거운 며칠간을 껴안고 이겨 내야만 한다. 모든 게 불리하기만 하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한두 번 도와 주다보면 꼭 그런 업체만 긴급을 입에 달고 사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가끔 야속할 때가 있다. 우리에게 주문하는 거래처도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라 이런 생리를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말이다.


이미 굳어진 성격을 하루아침에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회사의 운영 원칙을 깨는 것도 방법은 아니지만, 대화의 기술이나 표현의 방법 정도는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할 과정이다. 영업을 떠나서 인격의 문제이기도 해서 그렇다. 다음번에는 좀 더 세련되고 편안한 방법으로 상대방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까 통화에서 대통령까지 소환하며 나 혼자 흥분했던 업체와는 부드러운 문자와 한 템포 낮춘 전화로 잘 마무리했고, 결국 주문을 받았다.


지금 내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글쎄요” “한번 확인해 보고요”라는 덕목을 내 몸이 당분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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