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대인 면역력

by 사고 뭉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자연스레 멈추는 곳이 있다. <나 혼자 산다>, <나는 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3가지 프로그램이 그에 해당한다. 제목에 공통으로 보이는 ‘내’가 중심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진솔한 인간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매력을 어필하는 방송이다. 각 방송의 매번 챙겨보지는 않지만, 출연자에 따라 눈길이 머물 때가 있다.

세 가지 프로그램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보며 흥미를 느끼는 점이 그렇다. 또한 인연이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결혼을 목표로 배우자를 찾아 나서는 짧은 여정에서 묘한 긴장감을 갖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 본 사랑 경험을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삶의 뒤안길에서 대자연에 묻혀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대부분 남자들의 로망도 대신 느껴볼 수 있어서 좋다.

남들의 사는 모습이 궁금하던 차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관심과 공감이 가기에 집중을 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 이라고 하는데, 때론 잠시나마 혼자만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적절하다’는 단어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간섭 없이 혼자 살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적절한 교류도 하고 싶다는 것이 삶이 가진 양면성이라 생각한다. 비록 혼자 지내지만 때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산다는 점이 그렇다. 산골이 좋아 혼자 살고는 있지만, 찾아간 방송 진행자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는 ‘자연인’은 무척 아쉬워한다. 연인을 찾기 위해 나섰지만 그 며칠간의 방송 녹화 중에 찾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설렘을 얻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정도의 인간관계가 딱 적당하다는 말인 듯싶기도 하다. 허기를 완전히 채우지 않고 수저를 놓아야 다음번 식사가 부담 없듯이 말이다.

나 말고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적절함이 자칫 집착과 과도함으로 대인 관계를 힘들어 할지 모른다. 사업을 하면서 과거보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은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심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 피로를 나 역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송 프로그램을 생각하면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 아침 거울 속에 웬 늙은이가 세면대를 잡고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사자머리를 한 채로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허리도 욱신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몸이 결려서 “아아아”하고 소리를 내보려니 음성마저도 제대로 잠긴 상태였다. 과거 5년간 양평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잡초 베기로는 이골이 났을 법도 할 텐데, 그간 내 몸이 도시의 안락함에 잠시 취해 있었던가 보다.

공장 마당 여기저기에 난 억센 풀을 베다가 다리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지난 4년간 세입자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맡겨 놓았더니 마치 밀림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남 탓하기 전에 내 무심함이 컸다. 반바지를 입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특히 건물 뒤편에 굵고 무성하게 숲을 이룬 찔레나무의 가시는 생각보다 드셌고 내가 든 낫에 강한 저항을 했다. 기왕 손을 댄 것이니 나도 질 수 없어 톱까지 들고 힘겹게 겨루다가 장갑 낀 손에도 물집과 상처를 내고 말았다.

입추(立秋)를 하루 앞둔 그제의 일들은 그렇게 하나씩 내게 다가왔다. 샤워를 하는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차가운 물보다도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공사 업자를 만나 견적을 받고, 중개업소 사장도 현장에서 만날 약속으로 남는 시간에 내가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장갑을 낀 것이었다.

비도 흩뿌리고 하늘이 궂었기에 그나마 내겐 다행이었다. 연신 흐르는 땀보다 더한 번민을 느꼈다. 미팅 당사자 두 분이 도착하자 나는 비로소 자연스레 휴식 시간을 가졌다. 풀 베느라 내내 굳게 다물었던 입이 그 때부터 고생이었지만 말이다.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없고 항상 당당하던 나였다. 30년 가까운 영업에서 단련된 내공이 그나마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어제만큼은 3시간에 걸친 풀과의 씨름과 1시간가량의 업자 미팅으로 그동안의 세월이 땀으로 맥없이 씻겨간 듯했다.

아내에게 “나를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숨어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하곤 했다. 아내에게 괜한 근심을 끼쳤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주중의 사건들이 예전에 비하면 택도 없이 살짝 살짝 나를 건드리는 정도임에도 이제는 ‘대인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주말만이라도 고개를 세게 흔들어 피로의 잔상을 떨어버리고자 했다. 도서관을 찾아가거나 가까운 어디라도 가야만 붕어가 물 밖으로 입을 뻐끔거리듯이 작은 숨통이 트인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갈 수밖에 없도록 조물주가 우리들 머리에 입력해 둔 인간 본연의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저도 홀가분해지고픈 마음이 꿈틀거린다. 이제는 정말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맺고 살고 싶다.

그래도 나는 비교적 잘 살고 있다고 본다. 나는 혼자 살지도 않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있어서 그런 마음이 든다. 다만 인생 선배들이 그랬듯이 내가 산 속으로 언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가을의 초입에 느껴본 또 하나의 문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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