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는 존재

서점에 가면 어느 코너에 머무시나요?

문장이 아름다운 박준 작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by 김제리


서점에 가면 유난히 시선이 머무는 코너가 있다. 바로 ‘시’ 코너다. 소설이 소울 푸드인 김치찌개처럼 잘 먹힌다면 시는 어쩐지 쌀국수에서 처음 만난 고수와 같다. 맛이 참 생경하다. 수업시간에 배운 청산별곡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임금님을 향한 시라는데 신박한 아부라는 생각만 했다. 사실, 수능에서 개인적인 감상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국어 선생님이 밑줄을 치라는 타이밍에 형광펜을 들면 된다.


시집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당시 흠모하던 친구의 말에 시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거짓말로 남기면 안 될 것 같아 시집 코너를 들락날락거렸다. 평소에 알고 있던 유명한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구입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들으면 아쉬운 말이겠지만 이해되지 않는 문장의 나열이었다. 물론 어떤 시는 외우지 않아도 남는다. 안도현 시인이 쓴 시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따듯한 사람이었냐” 가 그렇다. 뜻도 단박에 이해가 되고 여운도 길다. * 출처.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4)


최근에 마음이 관통하는 시집을 만났다. 박준 작가가 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다. 연장선으로 그가 쓴 산문집도 좋았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라고 했다.

* 출처.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18p


회의실에 5,60대 남자 상사만 가득했던 회의실에서 잠깐 침묵이 흐르자 노래를 한 곡 뽑아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하다는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엄마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말에 눈물이 난 적도 있다. 온도는 다르지만 살아남은 말들이다. 박준 작가는 생각지 못했던 단어와 조합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줬다. 미사여구는 없지만 은은히 빛나서 계속 보고 싶은 문장이다. 밑줄 그었던 말을 집에 있는 노트 중 가장 비싼 몰스킨에 옮겨 적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빛나는 문장을 남기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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