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리 Oct 21. 2021

회사가 싫어서 병원에 갔다.

NGO 입사부터 퇴사까지 2년


- 안부처럼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 친구들, 가족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 참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대학시절부터 꿈꾸던 비영리단체에서 면접을 통과하고 인턴을 시작할 무렵, 굉장히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돈을 조금 많이(!) 못 벌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이직을 할 때는 기존 회사보다 크고 연봉협상도 다소 이루어지기 마련이지만,  딱 반대인 직장이었습니다. 연봉은 정확히 반토막이 났지요(…) 아빠는 당연히 반대하셨어요. 째려보는 눈빛을 모른척하고 2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신이 났습니다. 상사분이 하는 농담도 진심으로 재밌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한 적도 많았고요.


 언제부터였을까요?  같이 밥 먹는 시간이 곤혹스러웠습니다. 모두가 웃는데 입꼬리만 같이 올릴 뿐, 재미는 없었어요. 특히 저 빼고 모두가 남자인 회의실에서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으실 때는요. 애매하게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해서 대꾸하지 못했던 그때의 저로 돌아간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까요? 시나브로 입버릇처럼 퇴사를 노래가 시작되었지만 결정은 더뎠습니다. 푼돈이어도 생계였고, 꿈꾸었던 일을 하는데 왜 힘들지? 의문과 자책이 깊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오른발과 손이 저려왔습니다. 디스크인지 혈액순환이 안 되는 건지 분간이 어려웠습니다. 네이버에 증상을 찾아보니 심근경색 등 무서운 질병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잠을 못 이루다가 어딘가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베란다 난간을 달려 나가고 싶었어요. 이대로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를 누군가 조종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몸과 정신에 이질적인 느낌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잠깐 깼던 엄마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의 딸을 보시고 잠들지 못하셨어요. 제 팔다리를 주물러주다가 마침내 함께 응급실에 갔습니다.



 요란하게 아팠습니다. 응급실에서 CT에 심전도, 피검사까지 받았지요. 원인이 불분명해서 신경과에서 추가 진료도 받았습니다. 정신과도 예약했습니다. 비로소 직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아왔고, 모른 척 해왔는지 알았습니다.



 요새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게 감기로 내과에 가는 것처럼 쉽다고는 하지만 막상 가게 될 때는 문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약을 오래 먹게 될까 봐도 두려웠습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요. 나 자신이 어딘가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오빠가 정신과 약을 10년째 먹고 있었는데, 타인이 고통일 때는 마냥 피상적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예약된 날짜가 돼서 병원에 갔습니다. 초진 때는 양면으로 된 문진표를 작성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우울은 중 단계고 불안은 중상 단계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어떤 일로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직장상사가 저를 힘들게 하세요. 제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요. 제 이야기는 하나도 안 듣고 무시해요. 성차별도 있고요…"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마주 보는 테이블 위에는 휴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어서 응급실에 갔던 정황을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공황장애인지 자율신경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어요 다른 방으로 가서 왼쪽 다리와 양손에 집게처럼 되는 기계로 3분 정도 측정을 했습니다. 결과는 금방 나왔어요. 공황장애는 아니지만 제가 겪었던 증상은 공황장애 전조증상이라고 했습니다. 응급실을 갔던 밤처럼 불안이 심해질 때 약도 처방해주셨어요.


 퇴사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관리해야 하니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는 약을 먹는 게  좋겠다는 말도 해주셨고요. 더 깊은 상담은 연계된 곳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연계되는 센터에서 상담은 회기당 10만 원이었는데 부담이 되면 꼭 안 받고 여기서 상담받고(대신 짧아요) 약을 받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적은 돈은 결코 아니었지만 아끼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 돈을 회사에 청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회사에서 일하느라 받은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여기에 쓴다는 게 어이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말이었어요. 스트레스성이나 정신과 관련된 응급실, 검사 건은 보험회사에도 청구가 안되던걸요.


약을 받고 나서는 혹시나 공황 쇼크가 올까 봐 지갑에 항상 비상약을 넣고 다녔습니다. 화가 많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어딘가 분출해야 할 것 같았어요. 어딘가 열려야 할 것 같은데 어딘지를 몰라서 더듬거렸죠. 그럼에도 업무는 이어져야 했습니다.

















이전 05화 성격보다 입맛이 맞는 상사가 좋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