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27 삼쇠섬 18일차(덴마크22일차)
그들을 관찰하다보니 결국 들여다 봐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이곳의 저녁은 ‘해가 저문다’로는 알맞게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 시각은 저녁 8시 30분이지만 아직 밖은 환하다. 천천히 저녁을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있지만 여전히 밝은 하늘을 내다보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아직 하루는 남아 있구나. 아직 무언가가 저물기엔 너무도 환한 하늘이구나.
섬에 온 지 스무날 가까이 됐다. 이곳에 와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뭘 그렇게 못마땅해 하냐, 였다. 나는 스스로를 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여기 와서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내 모습이 많다. 아니, 발견했다기보단 인정하려고 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관계에 있어서, 특히 가까운 관계에 있어서 여유로움이 없는 사람이고 먼 관계일수록 철저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다. 매 순간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잘 휘둘리는 사람이고 여유없이 타이트하게 일하는 사람이다. 그걸 나와는 다른 언어를 갖고,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을 하고 있는 낯선 이들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그들을 관찰하다보니 결국 들여다 봐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단체 손님으로 정신이 없고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나와 일하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눈웃음 짓고, 내가 재차 묻고 미심쩍게 오케이를 외쳐도 언제든 다시 말하고, 농담하고, 찰나의 여유를 누리는 스티니를 보면서 그와는 다른 나를 인지하게 됐다. 일하는 시간에 나는 잘 쉬지 못하고, 눈치를 많이 보고, 항상 긴장해있다. 다른 이의 말에 과장되게 반응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고 현재의 시스템에 최대한 맞춘다. 문제가 있음을 못 느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걸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경직된 사람이었다. 그걸 인정하고나자 그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다.
이 좋은 곳에서, 좋지 않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만큼은 경직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일하고, 일하는 동안에도 나를 눈치 주는 이 없고, 하루의 긴 시간을 나를 위해 보내고, 충분히 산책하고, 무엇으로 하루를 채워도 괜찮은 지금, 여기에서.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자고, 지금 여기 나와 가장 가까운 이에게, 나의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한껏 표출하곤 샤워를 하며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문을 외웠다. 빡빡하게 좀 살지 말자.
여유를 찾아 떠나온 곳에서도 아직 나는 나를 많이 그러쥐고 있다. 그럼에도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되새기고 있다. 오늘은 작고 고풍스럽던 동네 도서관에서 가족에게 엽서를 보냈다. 예쁜 엽서들을 보며, 어디로든 엽서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친절한 도서관 사서의 말을 들으며, 그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가족을 떠올리고 편지를 쓴 나 자신이 참 다행이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쥐는 것,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시간을 이 먼 곳에 와서야, 나라는 이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나는 배우고 있다.
엽서가 꼭 집에 도착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