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에 흑사병도 아니고 전염병이 웬 말이냐
물론 3월부터 밀린 화물들이 들어오며 여기저기 치이며 사는 나의 미래를 알지 못했기에 한 말이었다.
이래서 입은 항상 방정을 떨면 안 된다.
설날이 지나고 바이러스로 인하여 중국 Office들이 Close 되었고 연장된 춘절이 끝나고 돌아오겠다는 자동회신 메일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사태가 길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음 주에 돌아오겠다던 담당자들의 복귀가 한 주, 두 주씩 늦춰지고 각종 매체에서 바이러스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다 보니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간간이 중국 담당자들과 연락이 될 때마다 현지의 상황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뭔가 자존심이 그것까지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근황도 궁금하지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저 나는 프로라는 마음으로 업무적인 내용만 주고받았다. 물론 답장을 받는 건 쉽지 않았다.
당연히 업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중국 정부에서 지역 간 이동 금지령을 내렸고 이로 인하여 모든 중국 담당자들은 집에만 머물며 원격으로 업무 처리를 하다. 대부분의 현지 공장들도 기약 없는 Close에 들어가면서 예정돼있던 일정은 모두 엉망진창이 되었다. 무언가 요청을 하면 며칠씩 걸리고, 제대로 확인도 안 되다 보니 일은 거의 폭탄을 들고 줄타기하는 느낌으로 흘러갔다. 배는 출항을 했는데 서류가 없다든지, 듣지도 못한 물건이 갑자기 들어왔다든지와 같은 상황 말이다. 어떻게든 일은 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문제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우리는 돌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가뜩이나 답답한데 한국의 수입 업체들은 더 극성이었다.
"이 물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운송하기 전에 방역 처리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건은 필요하고 이 난리 중에 어떻게 중국에서 들여오긴 했는데 막상 받으려니 찜찜하여 요청을 하는 케이스다. 이런 문의를 받을 때마다 '아니 그렇게 찜찜하면 수입을 안 하시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방역은 뭐 공짜로 해주나. 창고에서 해주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저희는 물건이 급한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세요"
급한데 답은 없으니 떼를 쓰는 케이스다.
평소 중국인과 일을 하면 답답해 죽겠다며 중국인들을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도 이때만큼은 인애(人愛)로 가득 찬다. "아니 저희도 방법이 없다니까요.. 사람 목숨이 걸렸는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죽어간다니까요?
아마 노벨이 살아서 통화 내용을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노벨 평화상이라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건 생각이 없는 케이스다.
중국 내 이동 금지령을 내리며 관공서 및 항구까지 Close 되었다. 공장이 문을 열어도 물건을 운송할 사람이 없고, 혹시 운송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수출통관을 할 사람이 없다. 거기다가 배도 스케줄을 바꿔 중국을 Skip 하고 있는 상황에 항구에서는 누가 물건을 배에 선적시킨단 말인가.
왜 안되는지에 대해 대여섯 번쯤 설명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럴 거면 그냥 녹음을 해놓고 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있어야 공장을 돌리고, 공장을 돌려야 납품을 하고, 납품을 통하여 수익을 내고, 수익을 통하여 다시 물건을 수입하여 공장을 돌리고.. 모든 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이익도 나고, 소비도 하고, 경제도 활성화되고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어쩌겠나 중국이 마비가 되었는데.. 내가 가서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좀 지나자 모든 업체들은 이러한 사태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떼를 써도, 화를 내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하기까지 우리의 감정소비를 돈으로 계산한다면 아마 VVIP 정도 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 중국 담당이던 나는 코로나로 인하여 2월 한 달간 회사를 편하게 다녔다.
2월 월급이 들어온 날 나는 "와 저 이번 달 월급 날로 먹었어요"라고 동료들에게 자랑을 할 정도였다.
물론 3월부터 밀린 화물들이 들어오며 여기저기 치이며 사는 나의 미래를 알지 못했기에 한 말이었다.
이래서 입은 항상 방정을 떨면 안 된다.
혼돈의 시간이 지나고 2월이 끝날 무렵
담당자들은 여전히 집에서 일을 하고, 여전히 열지 않은 공장이 많았지만 중국은 조금 안정화가 된 듯싶었다.
이 회사를 다니고 가장 마음 편했던 내 좋은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31번 확진자 a.k.a 슈퍼 전파자가 발생하였다.
혼돈의 시간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덕분에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만큼 한국도 오랜 기간 답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더 슬픈 건 그 시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참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반토막난 월급, 무급휴가,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등 듣기만 해도 싫은 것들이 여기저기 난무하고 있다.
퇴사를 계획하고 있던 나의 생각도 덕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금 퇴사하기에는 너무 상황이 안 좋다나 뭐라나.
에잇 진짜.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