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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동료의 퇴사를 바라보면서

아내의 퇴사에 대하여

by 빈공간의 미학

1. 아내와 함께한 회사 생활

저는 아내와 꽤 오랜 시간 함께 회사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한 사무실에서 말이죠. 입사하여 결혼을 했고, 결혼한 이후에도 3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근무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체를 차리는 경우는 있어도 일반적인 회사에서 부부가 한 사무실에 근무한다는 건 아무도 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아내와 함께 회의하고, 보고서 검토하고, 기획안 짜고, 워크샵 및 직원 교육도 해보고, 행사 준비도 해봤습니다. 아내와 함께 거의 365일 중 360일을 함께 생활하면 불편하지 않냐는 주변의 물음이 많지만, 제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손발이 잘 맞는 동료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손발이 맞는다는 말은 바로 우리에게 붙이는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아내의 퇴사

함께 했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아내는 이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전문성을 키우고, 다른 직급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하여 옮겨갑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불안합니다. 동시에 설레기도 하구요. 현 직장에 남아있는 저도 두려움, 불안, 설렘이 공존합니다. 아내의 이직인 동시에 제게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지는 일이니 불안과 걱정은 어쩔 수가 없네요.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갈 앞으로의 미래가 설레는 점도 있구요. 많은 경우 누군가의 퇴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하거나 잘된 일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나갈 줄 알았다고 평가하거나 진작에 나갔어야 된다는 평가를 하게 되죠. 반면, 누군가의 퇴사는 다른 이들에게 아쉬움을 줍니다. 업무가 불편해지고 많아지는 측면을 떠나 인간적으로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허전함을 주기도 합니다. 퇴사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아쉬움과 허전함을 준다는 것.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제가 퇴사한다면 아쉽고 허전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3. 퇴사과정을 바라보면서

타 부서 직원들이 퇴사한다고 하면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 가시는 곳에서도 잘하실 거예요. 건승하세요!' 정도가 의례적인 퇴직인사일 겁니다. 그런데 아내의 퇴사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앞으로의 가는 길을 격려하고 지지해 줬습니다.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지 못했으면 내가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퇴직 인사를 들으면 그게 인사치레로 하는 아쉬움인지 아니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지를 알 수 있죠. 많은 분들이 '우리 두고 어디 가세요?', '남아서 함께 회사 바꾸면 안 되는 건가요?', '그동안 친절하게 질문에 답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빈자리가 너무 클 것 같아요' 등 진심 어린 인사와 눈물을 글썽이신 분들이 있었고, 저와 함께 양손으로 받은 퇴직 선물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 또한 퇴직인사를 할 때 이렇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멋졌습니다.


4. 무엇이 아쉬움을 만들었을까요?

과연 아내의 어떤 점들을 보고 동료들이 아쉬움을 표현했을까요? 아내의 회사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 크게 세 가지의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친절함입니다. 저희 팀은 인사와 노무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과거부터 권력기관처럼 행동해 왔습니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지근거리에 있는 동시에 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니 다른 직원들에게 태도에 있어서도 불친절했고, 정보 제공에 있어서도 불친절했죠.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모두가 저희 팀을 경멸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내가 직원들을 응대할 때 보여준 태도적인 친절함 그리고 최대한 모든 정보를 세심하고 자세하게 제공하려는 친절함은 아마 우리 팀을 경멸하던 사람들, 불편해하던 사람들도 조금 쉽게 다가서고 물어볼 수 있도록 만든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디테일함입니다. 회사 동료로서의 아내는 무섭도록 디테일합니다.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디테일한 부분들을 챙기는데, 특히 행사를 진행하거나 교육과 워크숍 등을 진행할 때, 직원들이 처음에 입장할 때부터, 나갈 때까지 동선을 고려하면서 준비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어떤 리셉션이 준비되어야 하고,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작은 선물이 있다면 어디에서 감동할 수 있을지 섬세하게 준비합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섬세한 배려에 직원들이 항상 고마워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인격적 성숙함입니다. 자신의 평판만을 신경 쓴다면 주변 동료들에게는 잘할 수 있지만 권력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떤 곳이든 그 회사에서 가장 권력거리가 먼 분들은 도급 또는 하청업체 직원분들일 겁니다. 동료들에게는 한 없이 착하다가 도급업체만 만나면 슈퍼갑이 되는 사람들을 저는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죠. 그런데 제가 가장 감동한 것은 아내의 퇴사에 아쉬워함을 넘어 눈물을 글썽인 업체 직원분들이 여럿이었다는 점입니다. 회사 생활하는 동안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며 이해타산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진심을 다했다는 점을 증명한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인격적 성숙함의 징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아내와 제가 이 회사에 있으면서 이렇다 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재무적으로, 프로세스적으로, 직원 만족도에서 뚜렷한 성과가 무엇이냐고 말하면 쉽사리 말하기는 어렵네요. 그렇지만 삶의 여정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보면 아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움직여놓았다는 것만큼은 이번 퇴사 과정에서 분명히 증명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저희 팀에서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아주 일부이나마 바뀌었음을 말하는 것일 테고요. 삶의 여정에서 조금의 진일보는 가져온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을 볼 수 있는 행운에도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과정에 있는 아내를 보며 이제 응원을 보냅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겠지만 업에 대한 태도의 본질은 어디에서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잊지 않는 이상 저의 아내는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며, 새로운 배움의 장을 열어내리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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