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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Jan 31. 2023

기다린다

2AM "죽어도 못 보내"


태운아 보고 싶구나.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구나. 그저 너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글을 적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우리는 부산 항도중학교 1학년 7반 교실에서 처음 만났지. 공책에 만화를 그리고 있던 내게 먼저 다가와 만화가 선생이라 불러준 것을 기억해. 그건 우리의 유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지. 너는 만화에 많은 피드백을 해주었고 우린 점점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갔어. 그중에서도 종이 만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 건 아직도 기억이 나. 웹툰이 성행하면서 종이 만화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내게 너는 "그럼에도 종이 만화를 찾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라고 다독여줬지.


얼마 후 내가 힙합에 빠져서 너에게 얼른 들어보라고 하니 너는 주관이 뚜렷한 녀석답게 오히려 "이런 음악도 좋다"라며 음악을 추천해 줬어. Jyp 엔터테인먼트 뮤지션들의 음악이었지. 그러면서 너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지. 박진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이돌 음악계에서 JYP 뮤지션들이 선보이는 콘셉트들이 왜 혁신적인 건지 등을 계속 설명했어. 특히 너는 2am을 좋아했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죽어도 못 보내"를 들려주었어.


"어려도 아픈 건 똑같아

세상을 잘 모른다고 아픈 걸 모르진 않아"


가사 좋지? 그렇게 물으면서 앞자리에서 나를 뒤돌아보고 있던 네 모습이 기억난다. 교실과 학교 복도, 그리고 흐르는 시간과 알 수 없는 미래. 그 앞에서 우리는 어쩌면 음악을 듣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셈이 아니었을까. 네가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유난히 더 좋아한 이유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어.

우리는 2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반이 되었지. 여기서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났어. 나는 크루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지. 너에게 말하자 너도 창작을 한다며 자작곡을 들려줬지. Cubase라는 프로그램을 독학해서 만든 피아노 발라드였어. 오마이갓. 바로 가까이에 예술가가 있었구나. 너는 곧바로 창립 멤버로써 ABO(Artist BoxOffice)를 함께 만들었지. 다들 기억나지? 균이, 병준, 민재, 민석, 상현, 예찬, 호성, 헌국, 재원, 현석, 나중에 합류한 대원이까지. 다들 닉네임을 만들었고 너는 11911이라 정했어. 그건 내가 붙여준 예명이었지. 2am처럼 숫자가 들어간 이름을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었어. 긴급할 때 찾는 음악(119)에 대칭미를 더한(11) 것이었지. 너는 그 이름이 꽤 마음에 든다며 채택해 줬어.


11911! 11911!


그렇게 부르는 게 난 좋았어. 방송에 나오는 아티스트들이 오래도록 예명으로 불리는 것처럼 우리도 오래 서로를 아티스트로 여길 것처럼 느껴져서였어. ABO 멤버들도 너를 11911이라 불렀고 다들 하나의 크루로써 끈끈해졌어. 다 같이 네가 만든 곡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죽어도 못 보내"를 열창하기도 하면서 중학생 시절의 추억을 서로로 물들였지.


졸업을 하고 ABO는 각자 배정된 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졌어. 태운아, 너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서울로 올라갔지. 강남의 한 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싱을 배우기로 했다고 알렸어. 틈틈이 연습생 생활을 소개해 줬지. 어느 연습실에서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과 마주했는데 분명 잘 될 이들이라 예측한 것도 기억이 나네. ABO는 태운이 너를 응원했어. 입시 때문에 모두 바빠졌지만 나는 간혹 네게 새벽에 전화를 했지. 네가 받는 날이면 우린 밀린 안부를 나눴어. 괜찮게 지낸다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안도하곤 했어.


그런데 어느 새벽, 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 훈아, 여기 서울은 재능 있는 이들이 너무 많고 그들조차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너무 힘들어. 낯선 곳이어서 두렵고. 그래도 매일 아침 명언을 읽으며 버티고 있어.

우수에 잠긴 너의 그 말은 마치 "죽어도 못 보내"의 가사 내용과 겹쳐져 들리기도 했어.


"아프지 않게, 나 살아갈 수라도 있게..."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너에게 최대한 힘이 되는 말을 다 해주려고 했어. 그 절절하던 새벽의 대화는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영롱하고 생생해. 까만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린 것도 말이지. 언제쯤 우리 써놓은 거 다 비울 수 있을까. 제주도 여행도 가기로 하고... ABO 건물도 만들기로 했는데 말이야...라고.


하루는 고등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있는데 네가 하얀 해군복을 입은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왔지. 음악을 그만두고 해군 사관 학교로 입학했다고 소식을 전해왔어. 아. 나는 가슴이 철렁했어. 네가 서울에서 지고 왔구나.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순간 마비된 것 같았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보는데 너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어. 빡빡머리 아래 표정은 생기가 넘쳤지. 너는 사관 학교의 일과를 알려주었고 시간 엄수를 못하면 팔굽혀펴기를 한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 ABO는 다들 인정했어.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앞서 나아가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녀석이라고.


그 뒤의 기억은 꽤나 뒤죽박죽이야.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새로운 일을 겪느라 그리된 것 같아. 그래도 입학 전에 스무 살 첫 여행을 너, 균이, 상호와 한 건 기억해. 경주로 갔었지. 그때 찍은 사진을 네가 3년 넘게 프로필 사진으로 해둔 것도 기억해. 박스째 술과 음식을 담고 걸어오던 길 다 함께 찍은 사진이었지. 프로필 문구도 '다들 보고 싶다. 그리워.'였던 것도... 아련하게 기억해.


시간이 오래 흘러, 나는 전역을 하고 복학생이 되었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태운이 너의 소식이 줄어들어 있었어. ABO 단체 메신저에서 1년에 한두 번씩만 연락을 남긴 게 다였지. 대구에서 식당을 한다는 소식에 바쁘겠구나 생각하며 어쩔 수 없다 여겼어. 그런데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면서 네가 걱정이 되었지. 아니나 다를까, 적자가 연속이라는 네 말에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어. 그저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아쉬웠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소식이 끊겼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곧 부산으로 갈게"였는데 왜 그 뒤로 2년 넘게 무소식이니. 넌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니.


보고 싶구나 태운아. ABO는 언제나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는 너의 어떤 길이든 응원하고 네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너의 곡은 아직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어. 눈 내리는 밤, Lost, 아침, Times walk.... 그것들을 들으며 너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리고 오늘은 네가 좋아한 "죽어도 못 보내"를 듣는다. 귓가에는 이 노래가 왜 좋은지 설명하는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이런 내가 어떻게 널 보내니.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말이야. 요즘 나는 생각해. 앞서나간 너를 찾으러 이 사회에 나온 것 같다고. 뒤따라나와서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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