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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15. 틀을 깨는 파쿠르


건명원을 졸업 한 뒤, 나를 괴롭히고 있는 물음이 있다.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에 무(無)의 영역을 어떻게 하면 다룰 수 있을까?  


어떤 분야의 높은 경지에 이른 예술가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시를 쓰고, 그림의 여백을 다루고, 음악의 정적을 다루며, 건축의 공간을 다룬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무(無)의 세계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질 수 있는 유(有)의 세계를 살아있게 해 준다. 나는 아직 그러한 경지를 이루지 못했다.  


나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의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의 코는 맡고 싶은 것만 맡고, 나의 입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나의 몸은 했던 것만 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된 수련과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오늘 신한대학교에서 도전한 점프는 스스로 정해버린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꾸준히 파쿠르 수련과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 나는 이제 마지막 남은 파쿠르 1세대다. 나보다 앞서 오랜 시간 파쿠르를 수련해온 선배가 있었다면, 몸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선배가 없기에 노화하는 몸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컸다.  


 나의 무릎과 발목은 꾸준한 수련 덕분인지 19년 동안  관절염 없이 튼튼하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움직임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10대의 파쿠르, 20대의 파쿠르를 거쳐온 나는 이제 30대의 파쿠르를 새롭게 써야 한다. 그래서 20대의 전유물이었던 거대한 점프와 큰 충격이 가는 움직임을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자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오늘의 점프는 착지 지점이 좁아서 바로 낙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충격량을 이겨내고 플라이오 매트릭(Pylometric)을 실시해야 하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높이만큼이나 충격이 클 텐데 내 다리가 착지 지점의 1차 충격량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나이가 많아 충격을 못 버티고 다리가 풀리면 어떡하지?"  


 수많은 도전을 거치며 얻은 경험 중 하나는 위험에 직면한 순간, 나를 믿지 못하면 더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단 한 톨의 의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의심이 마음속에 깃들면, 실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확신을 얻기 위해 나는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한다. 그 질문의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성찰 지점이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누가 정하지? 무슨 기준일까?' 순간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가 이분법적인 비교의 언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성, 여성 길다, 짧다 높다, 낮다 가깝다, 멀다 잘한다, 못한다 성공, 실패  비교의 언어는 생각도, 말도, 행동도 한쪽 편으로 치우치게 되는구나. 비교의 언어는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진심이 왜곡될 수 있다. 나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자 나의 육체적 능력과 가능성이 보였고, 확신을 얻어 점프를 해냈다. 양편을 아우르는 길은 수평적인 왼쪽, 오른쪽의 움직임이 아니라 수직적인 위, 아래의 움직이어야 가능하다. 똑같은 수준으로 진영만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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