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쿠르 세계에 경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계기는 2007년 열린 세계 최초 세계 최초 프리러닝 대회 ‘레드불 아트오브모션(Art of Motion)’부터 였다. 2000년대 초까지 파쿠르 수련자들은 경쟁을 야마카시 창시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파쿠르의 진리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파쿠르를 스포츠와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을 파쿠르를 타락하는 행위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레드불이 당시 커뮤니티에서 가장 젊고 트렌디했던 어반프리플로우(Urban Freeflow), 템페스트(Tempest) 및 에어윕(Air Wipp) 등의 팀을 섭외하는 데 성공하면서 분위기는 반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파쿠르 커뮤니티에서 이 대회에 관한 평가는 다양했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선수들은 관중의 환호를 받기위해 몸을 무리하게 썼다. 라이언 도일(Ryan Doyle)은 1위를 차지했지만, 더블 콕(Double Cork) 기술로 잘못 착지해 심각한 다리 골절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라이언 도일은 몇 년 동안 부상이 심각해졌고 선수로서의 수명은 끝났다. 하지만 대회에 참여했던 팀들은 처음으로 대기업과 협력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어반프리플로우는 2008년 바클레이카드(Barclaycard)의 후원을 받아 런던에서 '월드 프리러닝 챔피언십'을 개최했다. 이 대회는 참가한 선수들끼리 서로 심사한다는 점 하나만 제외하고 ‘아트 오브 모션’과 매우 유사했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은 ''경쟁한다고해서 파쿠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는 초기 파쿠르 대회들이 모두 겪었던 문제들로 인해 가려지고 말았다. 미디어는 파쿠르를 ‘익스트림 스포츠'로만 규정했고, 코스마다 매트가 깔려있었다. 첫번째 경기가 있던 날에는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9년 부터는 파쿠르 대회규정에 변화가 시작됐다. 선수들끼리 서로 점수를 주는 심사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심사기준에서 매트를 제거하고, 기술 숙련도의 중요성을 높이자 선수들은 안전하게 착지할 수 없는 동작들은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부상과 사고가 줄었다. 변수가 많은 스포츠에서 선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한 번도 경쟁해 보지않은 선수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파쿠르 대회가 열리고, 경쟁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초기 파쿠르 커뮤니티에서 가장 고민하던 문제였다.
파쿠르 수련자들은 다른 스포츠 사례들을 찾기 시작했다. 파쿠르는 기계체조 대회와 공통점이 많아보이지만, 체조 선수들은 매번 같은 장비로 같은 루틴을 경쟁한다. 반면에 파쿠르는 장소 의존도가 크고, 경기 전날 선수의 움직임의 흐름을 구성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던 중 스케이트보드나 BMX(자전거 레이싱)와 같은 길거리 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케이트보드에서 ‘Runs’ 대회는 선수들에게 코스에서 몇 분간 최고의 기술들을 연결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스케이트보드 선수들은 기술의 난이도, 실행 방식, 그리고 동작들을 얼마나 부드럽게 연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다른 스포츠의 규정들을 너무 많이 참고한 결과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는 시간제한이다. 당시 파쿠르 선수들의 체력 수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지껏 단 한 번도 측정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하면서 1분은 너무 길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 선수들은 움직임의 연결보다는 숨을 고르고 포즈를 취하거나, 청중에게 과시 혹은 쇼맨십 시간으로 채우려고 했다. 선수들이 가장 피곤한 상태에서 무모한 기술들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두 번째 문제는 가치 측정이다. 심판, 선수 등 그 누구도 어떻게 플로우 vs 난이도 vs 실행력 vs 창조성 등의 평가항목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해야할지 몰랐다. 초기 파쿠르 대회에서는 난이도가 최우선 항목이었다. 라이언 도일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레드불의 첫 아트오브모션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래서 2011년까지 파쿠르 대회 규정은 선수가 경기 중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경우 승리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선수들은 다치지 않고 깔끔한 경기를 하기 위해 너무 안전하게 플레이하기 시작했고, 기술의 난이도와 연결성을 포기했다. 이에 점차 평가항목으로 기술의 연결성, 흐름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 규정은 선수들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선수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경쟁 기준에 맞춰 훈련을 시작했고 그 결과가 나타났다. 선수들은 대회 코스를 쉬지 않고 움직였으며, 몇 년 전만 해도 단일 기술로 끝내야 했던 가장 어려운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다른 움직임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화는 파쿠르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인스타그램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레드불 아트오브모션’이 비디오 예선을 도입하기 시작하자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비디오 예선의 목적은 전 세계에서 재능있는 선수를 선발하기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여는 선수들이 파쿠르 훈련을 열심히 하도록 장려한 것이다. 아트오브모션 비디오 예선을 준비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파쿠르 선수들은 체력과 어려운 기술의 숙련도도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파쿠르를 잘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준을 크게 높였다.
북미 파쿠르 커뮤니티의 리더들은 자체 대회 규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파쿠르 선수들이 대기업이 만든 대회의 규정에 따라 훈련하는 것과 달리, 캐나다 벤쿠버의 오리진 파쿠르(Origins Parkour) 팀은 파쿠르 수련자들이 실제로 훈련하는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대회 형식을 개발했다. 이들은 후에 스포츠 파쿠르 리그(SPL, Sport Parkour League)라는 단체로 성장했다. SPL은 ‘아트오브모션’처럼 프리스타일 파쿠르 대회만 진행하는 것 대신에 경쟁을 스피드(Speed), 스킬(Skill) 및 스타일(Style)로 나누었다. 스피드코스 대회는 파쿠르 훈련의 효율성 측면을, 스킬 대회는 단일 기술에 대한 선수의 힘, 자신감 및 통제력을 테스트한다.
아트오브모션 대회가 기술의 흐름, 난이도, 실행 및 창의성 평가 기준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참고하여 SPL팀은 처음부터 흐름(Flow)만을 강조하기로 결정했다. 짧지만 잘 계획된 흐름은 많은 트릭들을 오랜시간 이어가는 실행보다 대회에 더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 아트오브모션 대회는 평균 30~45 초 동안 파쿠르를 이어가야 하지만 SPL 대회는 약 15초 동안 논스톱으로 파쿠르의 흐름을 보여주면 된다. SPL은 2014년에 플래그(Flag, 깃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선수들을 정해진 코스에 몰아넣는 대신 깃발을 사용하여 코스를 다양한 경로로 개방하고 선수들의 강점을 발휘할 수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이 코스는 빠른 상승 및 하강, 방향 변경, 높은 곳에서의 정교한 발 배치를 위한 장애물을 만들었다. 선수들은 빠르게 이동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적응능력과 다양한 파쿠르 기술에 능숙해야 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파쿠르를 다양해졌고, 그 안에 경쟁이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경쟁이 파쿠르의 본질을 변질 시키지도 했지만, 파쿠르를 성장시킨 것도 사실이다. 수련자들이 선수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2018년, 창시자 데이비드 벨과 국제 체조 연맹 와타나베 회장의 스위스 로잔에서의 미팅으로 파쿠르는 기계체조의 8번째 종목으로 편입됐다. 데이비드 벨은 국제체조연맹 파쿠르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됐다. 이제 파쿠르는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변신했다. IOC에서 승인하지 않았지만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 채택을 논의했을 정도다. 2017년, 영국은 파쿠르를 공식 스포츠로 인정했다. 2022년까지 국제체조연맹은 연 4회의 파쿠르 월드컵을 중국 청두, 일본 도쿄, 히로시마, 불가리아 소피아,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개최했고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여전히 국제체조연맹에서 파쿠르 종목을 빼앗아간 것에 대해 기존의 파쿠르 커뮤니티에서는 반발이 심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파쿠르 문화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