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땅콩을 캐서 먹는 계절이 오면 감회가 새롭나 보다. 벌써 일 년이 지나고 다시 고소한 땅콩을 먹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고 세월이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이 놀랍기도 한 모양이다. 아직 완전히 여문 것은 아니지만 몇 개 캐서 삶아 보았다. 여전히 맛있다.
온통 산으로 둘러 싸인 시골집에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는 도시에서보다 훨씬 진하다. 마당에 기울어진 볕이 그렇고 소슬하게 부는 바람이 그렇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그러하다.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딸과 그녀와 찰떡궁합인 동생이 서울의 우리 집인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읽은 <삼십 평형 아파트에서 성인 네 명이 살고 있습니다>는 글의 내용과 우리 집의 상황이 흡사했다. 삼십 대의 두 딸이 육십 대의 부모님과 한 아파트에서 지내는 일상이었는데 댓글의 대부분이 힘드실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어서 부모 입장인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갔던 글이었다.
자녀의 나이가 삼십이 넘으면 독립의 의지가 뚜렷해진다는데 이미 가치관과 습관이 완성된 터에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 역시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자녀와의 생활이 벅차기도 하니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서울의 주거비가 좀 비싼가? 그러한 이유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뻔한 아파트의 주거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는 시골집을 팔아 딸들이 지낼 오피스텔을 얻어줄 궁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이웃 언니가 집을 구한다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여 연결이 되었다. 시골집이 주로 비어 있기에 외관만 보고 간 사람이 실내를 보고 싶다고 하여 이웃 언니가 대신 문을 열어주어 구경을 하고 갔다는데 다행히 집을 사겠다는 연락은 없다. 여름에는 잡초가 기승이고 벌레도 많아 관리하기 힘들어서 집을 보겠다는 사람에게 허락은 했지만 가을이 되고 보니 이 좋은 시골 생활을 포기하려 했던 내가 믿기질 않는다.
황토방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풀벌레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서 자는 잠은 자다가 깨어도 좋다. 서늘하고 깨끗한 밤공기를 들이마시고 새벽이면 솜이불을 끌어안고 자는 잠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바람과 새소리,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세상은 도시의 피로를 언제나 씻어주니 평일 동안 열심히 일한 남편은 시골집에서 이틀 푹 쉬고 나면 다시 일할 힘을 얻는다.
독한 거름과 강한 햇볕으로 서너 개만 남기고 모조리 녹아버린 배추 모종을 다시 사서 심었다. 일주일 사이에 날씨가 시원해지고 비도 왔기에 잘 활착 해서 자라고 있는 배추 모종이 싱싱해 보였다. 벌써 벌레가 먹은 잎사귀가 보여서 한랭사를 씌워서 농약을 안 치는 대신 배추를 지켜주기로 하고 남편이 그 작업을 혼자서 했다. 나는 밖에 나가기만 하면 모기에게 물려서 벌써 긁는 중이었다. 다 해봐야 서른 포기 남짓 되는 배추를 위해 신방처럼 예쁘게 모기장을 쳐주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조금씩 바람이 서늘해지면 주변의 산이 물드는 단풍의 계절이 오고 곧 추워지는 겨울도 오겠지. 딸들과 옥신각신하며 아파트에서 비좁게 살더라도 이 좋은 시골집은 누구에게 넘겨주지 말고 잘 버티고 있다가 남편이 은퇴를 하면 좀 더 자주 길게 머무는 곳으로 남겨두고 싶다.
내가 건강식과 함께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 지 석 달이 거의 되어 간다. 처음엔 적응하려니 힘들고 괴로운 때가 많았으나 차츰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어 좋은 점이 훨씬 많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생활이 피부를 좋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니 보는 사람마다 활기가 있고 몸이 단단해 보인다고 하는데 전보다 피로감이 없고 기분도 밝아졌다.
일상은 탄력을 회복하여 하루를 보내는 일이 힘들지 않다. 전에는 딱히 할 일이 없고 먹는 것도 부실하여 무기력하게 보냈다면 지금은 삼시 세끼 촘촘한 식이와 운동으로 바쁘게 지낸다. 오늘 아침엔 태풍이 온다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공원으로 운동을 가니 사람이 거의 없는데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나 자신이 하나도 가엾지 않고 즐겁기만 했다. 건강한 식이를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이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습관처럼 자리 잡히기까지가 힘들지 몸으로 효과를 직접 느낀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저녁에도 비가 와서 오늘은 아파트 계단을 세 번 오르는 걸로 저녁 운동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