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부터 가을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장마 뒤의 우거진 잡초를 정리하고 텃밭을 고른 후에 김장 때 쓸 배추 모종과 무 씨 그리고 총각무와 대파 등을 심어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날은 무덥고 햇살은 뜨거워서 밭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미루고 있었다.
봄부터 여름이 다 가도록 시누이를 시골집에 초대하지 않았기에 무성한 깻잎이나 좀 따가시라고 함께 가자고 했다. 내가 먼저 불러주기만 기다리던 시누이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시누이가 일 잘하기로야 따라올 사람이 없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보여준 솜씨는 혀를 내두를 만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시누이는 전날 일찍 자서 마침 깨어 있던 남편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마당과 텃밭의 풀을 모조리 뽑아놨다. 다음 날엔 뒷마당의 풀과 꽃밭의 풀을 깨끗이 정리하여 쌓은 풀이 그득하니 높았다.
남동생 집이라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몸 사리지 않고 일해주는 시누이 덕분에 여름 동안 사람 안 사는 집같이 풀이 우거졌던 시골집이 훤해졌다. 땀 흘린 김에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두둑을 만든 다음 장터에 나가 배추와 상추 모종을 사 왔다. 무와 알타리, 얼갈이는 냉동실에 작년에 쓰고 남은 씨앗이 있어서 텃밭에 뿌렸다.
그런데 묵은 퇴비라고 방심한 채, 토요일 오후에 밭에 퇴비를 뿌리고 다음 날 오전에 모종을 심었더니 아뿔싸! 오후가 되어 밭에 물 주러 가보니 배추 모종의 대부분이 노랗게 말라 있었다. 뿌리도 없다시피 부실하던 모종에 독한 퇴비에다 한낮의 강한 볕까지 더하니 어찌 견디었겠는가?
농사 경력이 이만큼이나 쌓였는데도 실력은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부부의 실수였다. 다음 주에 배추 모종을 새로 사서 심어야 할 것 같다. 장터에 함께 갔던 이웃 언니와 한 판을 반 나눠서 샀기에 오십 포기 남짓이었는데 다시 반 판을 사서 심고 나비가 알을 낳지 못하도록 그물(한랭사)을 씌우는 작업도 같이 해야 약을 치지 않고 키울 수 있을 듯 하다.
밖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밭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하니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눈에 들어가 쓰라렸다. 풀에 덮여 보이지 않던 땅콩과 고구마 이파리를 살려주고 쏟아지던 비에 파였던 두둑을 도로 쌓는 북 작업을 하고 나니 그제야 밭처럼 보이는 것이 보람 있었다. 하지만 너무 더워 전후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 내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해야 했다.
지난주에는 둘째가 친구들과 시골집에 놀러 온다고 해서 집을 비워 줬더니 벌레가 무섭다고 밭의 작물을 따오라는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 옥수수는 수확 시기가 지나서 새들이 반쯤 파먹고 나머지는 말라버렸다. 토마토는 아예 익어서 떨어져 버려 달린 게 없었다. 오이는 노각으로 변해서 노란 몽둥이가 되어 있었다.
시누이는 깻잎을 낫으로 베어 이파리를 딴 다음에 장아찌도 만들고 삶아서 나물도 만들어 가져 갔다. 일을 하도 잘해주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도 고마운 마음에 복숭아 농사짓는 이웃에게 두 상자를 사서 시누이에게 한 상자 주었다. 마지막으로 보라색 벌개미취를 잘라 꽃 좋아하는 시누이의 짐꾸러미 위에 얹어주었다.
그동안 텃밭에 배추를 안 심은 이유가 있었다. 한창 늦더위가 기승인 여름에 밭을 정돈해서 심는다는 게 더위를 몹시 타는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올해엔 심은 배추로 김장을 담을 수 있을지 출발부터 불안하지만 싱싱한 배추로 김치를 담고 싶긴 하다.
시누이와 이박 삼일 동안 일하며 밥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적당히 소일거리가 있고 밭에서 바로 따서 해 먹는 신선한 반찬이 있어서 어디 놀러 가서 지내는 것보다 시골집에서 보내는 일상이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두엄자리에 심은 맷돌 호박이 아주 잘 자라고 있어서 앞으로 따게 되는 늙은 호박은 모두 시누이 몫으로 드린다고 했다. 호박죽을 잘 끓이는 시누이는 무척 좋아했다. 벌써 아담하게 익은 노란 호박 하나를 따서 안겨 드렸다.
가을이 되면 닭과 전복, 문어 등을 솥에 넣어서 장작불에 삶아 먹자는 시누이의 제안에 나는 겨울 되면 작년처럼 사골도 고아서 해 먹자고 했다. 일을 벌이는 걸 겁내지 않는 시누이가 있어서 거들기만 하면 되니 예전처럼 시누이와 함께 하는 며칠이 그리 힘들진 않게 느껴진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시골집에서 소소하게 장작불 때고 맛있는 음식이나 해 먹는 그런 일상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