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기획안을 쓰게 되면,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기획안이 실제로 실행되고 빛을 볼 수 있으려면, 나보다 경험이 많은 상사 그리고 그 위의 여러 상사의 컨펌이 있어야 하죠.
사회 초년생일 때에는, 기획안을 들고 갔을 때 이런저런 조언을 주고 수정해 오라는 상사의 말이 참 짜증이 났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상사에게 구두 보고를 한 후에 작성한 기획안이기도 하고, 일을 진행하려면 빨리 컨펌을 받아야 하는데, 마치 상사가 딴지를 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기획안을 컨펌해줘야 하는 위치가 되어 보니, 아래 직원이 들고 오는 기획안에는 대부분 수정이 필요한 부분들이 꼭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혹은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경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꼰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분야에서 한 사람의 과거가 꼰대로 작용하지는 않아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소중한 노하우일 확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무작정 열심히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아요. 효율을 운운하는 것이 가끔은 요령을 피운다는 불명예를 얻기도 하지만, 고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잖아요?
나를 위한 계획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에도 경험 있는 사람의 컨펌이 필요하고 효율성을 따져봐야 했어요.
개인적인 계획인데 누구에게 컨펌을 받냐고요?
계획은 성실하게 세우면 그만인데 효율이 무슨 말이냐고요?
이 말은 마치, 새벽까지 공부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현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계획은 그저 착실하고 꾸준히만 가지고는 아웃풋을 내지 않아요.
내 계획의 컨펌은 계획을 쓰는 그 순간이 마냥 재밌기만 한 내가 아니라, 한 발자국 떨어진 내가 컨펌합니다. 나에 대한 경험이 많은 나 말입니다. 계획 그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면, 이 계획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계획인지 정말 나에게 필요한 계획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계획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펜을 내려두고 한 번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엄마나 동료의 시선으로 계획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놀이의 재미로 수정하는 것이 아닌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계획의 효율성은 얼마나 나를 잘 알고 있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간혹 계획표를 되돌아보면, 내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항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도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공부 잘하는 다른 친구가 하는 방법을 억지로 따라 해 보겠다며, 친구의 방법을 그대로 내 계획에 넣어 본 실수는 누구나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과정도 괴롭고, 결과도 우울할 수밖에 없어요.
평소 내가 어떤 성격인지, 어떠한 환경에서 집중을 잘하는지, 무엇을 먹으면서 책을 읽어야 책장이 잘 넘어가는지 등 아무리 소소한 습관이라도 내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계획은 세웠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잘 세웠는지가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기획안을 쓸 때만큼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보세요. 계획을 실행하기도 쉬워질 것입니다.
! 지금 쓰고 있는 계획들을 몇 시간 후에 다시 살펴보세요. 계획표를 만들며 느끼던 흥분과 재미에서 벗어나 보면, 조금이라도 객관화된 입장에서 내 계획을 체크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반려받지 않을 만한 계획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