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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Sep 25. 2016

나의 기준과 상대방의 기준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집의 일부를 수리하게 되었다. 


일주일로 예정되어 있던 공사의 3분의 2 정도가 완성된 날이었다. 집안을 한 번 둘러보니,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게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으로 남은 공사 역시 기대 이상으로 해내길 바랬다.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말하자, 인테리어 담당자는 자기네 직원들이 원래 일을 잘 한다며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일만 잘 한다면야 이 정도의 자신감은 박수받을만하다. 언제든 환영이다.


그런데 약속된 공사 기간의 마지막 날,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최종적으로 둘러보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몇 가지 화가 나는 상황들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역시 일하면서 좋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대규모 공사가 아니었기에 견적이 적어서 소홀히 한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틀 사이에, 유쾌했던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싫은 소리가 시작되었다.


이튿날 새벽, 어제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보며 일기를 쓸 때였다.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마무리까지 깔끔했으면, 그래서 내가 만족했더라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시켜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일을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하지? 라며 울그락 불그락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종이에 털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내 상황이 떠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선배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중이었다. 금전적인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나도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고 이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기꺼이 받아들인 일이었다. 헌데, 추석이라는 명절을 코 앞에 두고 있었고, 아이의 첫 기관 선택 및 적응 기간이 시작되면서 조금은 나태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선배에게 내가 이 인테리어 담당자처럼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테리어 담당자는 적은 돈을 받는 만큼 그만큼만 신경쓰려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직원들을 너무 믿었는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챙기는 윗사람이 없으면 설렁설렁 일하는 직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한 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기에 기대치가 처음보다 훨씬 높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평가하는 기대치는 오르면 올랐지 좀처럼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기대치가 내려간다는 것은 그 사람과 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그리고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생략된 채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는 경우다. 그렇게 된다면 상대방은 '내가 이렇게나 기대를 했는데,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보내준' 나쁜 사람이 된다. 상대방은 10 레벨의 사람이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20을 기대한 나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올려버린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온 상대방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은, 나다. 


난 어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 적은 없는지.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반대로, 도와주겠다는 말을 쉽게 하거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과정에서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내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 높여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내 행동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넌 왜 그렇게 하는 것이냐고 비난하며 내 감정만 소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심을 내면 낼수록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욕심이 많을수록 상처받는 이유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는 나를 몰라서다. 나를 몰랐기에, 기대치를 잘못 정했다. 함께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상대방을 잘 몰라서다. 나를 모르고 상대방을 모르는데, 어떻게 서로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세우고 기대치를 조정하겠는가.


상대방을 닦달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나이는 지난 것 같다. 그래 봤자, 남는 건 이루었다는 만족감보다 찜찜함 뿐일 테니 말이다. 대신, 나에 대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 혼자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마치 짝사랑 같기 때문이다. 기대치는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다. 그만큼 많은 대화를 하고자 한다.


결국 나를 잘 알고 상대방을 잘 아는 일이야 말로, 나와 상대방의 기준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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