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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Jul 14. 2016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내가 외로운 걸 보면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너 역시 많이 외롭겠다.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힘들겠다.

나도 이렇게 힘든 걸 보면

그땐 참 좋았는데


우리 함께 거닐고

우리 함께 미소 짓고

너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가

우리의 관심사였던 그때

그때는 참 좋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다

존대가 편해지고

너의 이름조차 부르기 힘든 날 보니

네가 날 보며

네가 날 부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다.


지금 많이 외롭겠다.

홀로 거리를 거닐고

홀로 식사를 하고

아무도 말 상대가 되어 주지 않는

내가 외로운 걸 보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너 역시 많이 외롭겠다.


지금 정말 슬프겠다.

애써 내게 웃어 보이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애써 네게 웃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너 역시 많이 슬프겠다.


너도 지금 느끼고 있겠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내가 지금 내 사랑을 확인했듯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실바람


실바람이 불어와

끝까지 쓰지도 못한 내 편지를 앗아가 버렸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휘날리는 내 편지가 이리저리 부대끼어

갈기갈기 찢어지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이슬비 휘날리던 종각 어디쯤에서 인가

내 마음속의 널 살짝 보려고 조심조심 꺼내어 바라보다

다 보지도 못한 너와의 추억을

실바람이 불어와

훔쳐 가 버렸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실바람에 휘날리어

나의 옛 추억이 멍들고 진익여

그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돼 버리도록

난 멍하니 눈물만 글썽이며 바라만 보았다.


어느새 인가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실바람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꽃을 피우고

그 꽃가지들을 생기 넘치게 흔들어 대고 있다.


살랑살랑 실바람이 불어와 내게 다시

미소를 가져다주었다



사랑의 의미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니?”


언젠가 네가 내게 넌지시 던진 말이었는데

난 그때 네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이젠 나도 그 의미를 말할 때가 돼 버렸는데

난 아직 그 의미를 사전에서 조차 찾아보지 못했다.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것은 좀처럼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내 머릿속은 언제나 사랑이란 낱말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난

내 젊음의 노트를 사랑과 우정의 낱말 풀이로

한 장씩 두 장씩 채우고 있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난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구별할 수 없었고

그것들을 애써 구분 지어 놓으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난 날 위해 그것들을 애써 구분 지어야 했고

덜 맞추어진 모자이크 퍼즐처럼 보였지만

그나마 내겐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나마 내가 지금 행복하다 자위하는 건

구름 앞에 해를 그린 아이처럼

내가 원해서 짜 맞춘 모자이크 퍼즐이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이 슬프지 않은 이유


낙엽이 슬프지 않는 이유는

떨어지지 않는 건 낙엽이라 불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낙엽은 떨어질 때 비로소

우리네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이다.


떨어지지 않고 겨울 내내

나무에 붙어 봄을 기다리는 나뭇잎은

봄이 되어 새로운 잎이 돋아날때

빛바랜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 더 불거져

몸이 사그라지는 그 순간까지

이미 늦어 버린때를 그리워하며

서서히 사그라져 잊혀질 뿐이다.


그건 단지 썩은 나뭇잎에 불과 하지

아무도

그네들의 가슴에 묻어 주지 않는다.


낙엽은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야 자신의 이름을 들을 수 있지만

그리 슬프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이들 곁으로 떨어져

그네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가을 노을빛과 함께

영원히 묻어주기 때문이다.


낙엽이 슬프지 않는 이유는

떨어지지 않는 건 낙엽이라 불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Ⅱ

(앞으로의 시간 안에서도 분명 사랑은 존재했으므로)


내가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시간을 다 더한다 해도

내 시간보다 길지 않듯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더한다 해도

내 사랑보다 클 순 없다.


사랑이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서로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자신만의 사랑을

품에 품고 어떠한 순간에도 놓치지 않을 때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순간순간 변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세상이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고

그 시간보다 분명 길 앞으로의 시간 안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우린 그걸 찾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 안에서도 분명 사랑은 존재했으므로



사랑 Ⅳ


난 내 주위의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는데

넌 네 주위의 모든 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조금만 다가서면 이성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거리감을 느껴야 했고

남의 눈을 의식해야 했다.


사랑이 없는 이들의 세상에서

사랑은 내게 상처를 주었고

그들 역시 내 사랑의 의미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의 이분법으로 쪼개기만 할 뿐

그것들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잘게 잘게 쪼개어

가을날 읽지 않는 시집 속의

책갈피로 쓰고 있다.


우정 안에 사랑이

사랑 안에 우정이

사랑의 종류가 많듯

우정의 종류 또한 많은데


하나도 정확히 모르며

세상은 날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 Ⅴ


사랑한다.

언제부터인지 내 맘에 싹트기 시작한 사랑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켜져 열매가 맺혀 버렸다.

하지만 널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구나.


내 속에 열린 열매를 보며

이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씩 조금씩 그 정체를 느낄 수 있었고


막연하기만 해서

늘 목말라 우물을 파듯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전부 파헤쳐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감정이었는데


내게 열려 버린 걸 키워 가며

그 전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구나.


그 뿌리가 서서히 내 심장을 파고들어

내가 받아야 하는 고통이 생길   없지만 

그 해답은 언제나 그랬듯

너만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난 이제 더 이상 네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혼자 알아낼 수밖에


그러고 보니 그때

네게 물어볼  없었 그때

그때부터

난 사랑에 눈을 떴는가 보다.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내 이별


난 지금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이별을 준비하며

너와의 행복했던 그 느낌과 같은 양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그 슬픔에 버거워 비틀대며

이별의 순서를 정하고 있다.


널 위한 내 사랑이 서툴렀기에

우리의 이별만은

아름다웠다 기억할 수 있도록

너와 사랑했던 순간만큼이나

행복한 마음으로 가끔 미소까지 띠며

아름다운 이별의 순서를 정하려 하지만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이별이 되려는지

 보내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나와 멎을 줄 몰랐고

너의 뒷모습을 보며 뒤돌아서야 할

마지막 순서를 해낼

용기가 내겐 없었다.


넌 너의 사랑을 찾아 떠나간다며

슬픈 듯 보이는 눈물을 보이며

뒤돌아서겠지만

난 나의 사랑을 떠나보내며

행복을 빌어 주는 듯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설

용기가 내겐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준비한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나의 이별을



친구의 편지


잘 지낸다며 우스갯 소리

두어 마디 집어넣어 보내온

녀석의 편지 속엔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두어 마디 글 속에 배어 있었다.


그 속엔 한 숨이 배어 있었고

눈물이 스며 있었다.


난 그 생각에 한숨 쉬며

녀석에게 두어 마디의

우스갯 소리를 집어넣어

보낸 편지가 전부인데


녀석은 나의 한숨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 걱정하지 말라며

건강하다며

내게로 다시 답장을 보낸다.


‘행복한 거 잊지 마’란 말을

막 생각한 듯

추신으로 쓴 답장을 읽는 나 역시

녀석에게 보내는 편지 봉투를 붙이기 전

한번 읽어보다

겨우 추신으로 ‘행복한 거 잊지 마’란

내 맘을 써 보낸다.



나의 소중한 친구여


외롭고 슬프고 또 외롭고 슬플 때

너의 모습이 떠오르면

나의 마음은 언제나 평안을 되찾는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사랑과 우정을 떠나

세상의 모든 근심과 세상의 모든 희망을 떠나


나에게

너에게

존재하는 믿음만이 존재한다면

이 한 세상 조금의 여유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너와 나의

가치를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해도


너와 내가 믿는 세상은 아직 내 앞에 놓인 술만큼이나

너와 날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만들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

내 앞에 놓인 술병 속의 술만큼이나

너와 날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믿자

우리의 이상이

이상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우린 그들보다 세상에 덜 취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

젊음도 무서워하지 말고 그것을 품고 당당하게

우리의 몫을 쌓자.


우리의 이상이 현실이 될 그날까지

우리의 몫을 쌓자



세상이 되어 버린 너


세상이 되어 버린 너의 삶 속에서

난 그저 그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 중의 하나였던가 보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거닐던 거리였는데

언뜻언뜻 스치는 실바람이

내 귓불을 내 입술을 간지럽힐 때면

난 언제나처럼

너와 함께 거닐던 길가에 서 있다.


한강 너머 빌딩 숲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며

나의 존재의 이유를 떠올려 보곤 한다.


나의 존재란

네 필통 속의 볼펜일 수 도 있고

네가 지금 신고 있는 구두일 수 도 있다.

난 단지 널 위해 존재했는데

넌 날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대번에 알아 버릴 너인데


난 날 위해 네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추억 Ⅰ


슬픔이 큰 사람은

그만한 무게의 기쁨을

가슴에 안고 살기 때문에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 없다.


내 가슴이 기억하던 네 모든 기억을

하나씩 둘씩 너와 거닐던 거리를

거닐며 원래의 자리에 떨구어 놓았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버린 그 추억이

내가 주인인 줄 대번에

알아 버려 함부로 내 품속을 파고든다.


시간의 흐름만큼 야위어도 되었을 걸

그 무게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고

난 다시 힘겨워 야위어만 간다.


기쁨이 큰 사람은

그만한 무게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난 그 큰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

내게 다시 돌아온 슬픔을 추억이라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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