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로운 걸 보면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너 역시 많이 외롭겠다.
힘들겠다.
나도 이렇게 힘든 걸 보면
그땐 참 좋았는데
우리 함께 거닐고
우리 함께 미소 짓고
너의 관심사가
나의 관심사가
우리의 관심사였던 그때
그때는 참 좋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다
존대가 편해지고
너의 이름조차 부르기 힘든 날 보니
네가 날 보며
네가 날 부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나 보다.
지금 많이 외롭겠다.
홀로 거리를 거닐고
홀로 식사를 하고
아무도 말 상대가 되어 주지 않는
내가 외로운 걸 보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너 역시 많이 외롭겠다.
지금 정말 슬프겠다.
애써 내게 웃어 보이는 너의 모습을 보며
애써 네게 웃어 보이는 나의 모습을 보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너 역시 많이 슬프겠다.
너도 지금 느끼고 있겠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내가 지금 내 사랑을 확인했듯이
넌 언제나 나와 같았으니까
실바람이 불어와
끝까지 쓰지도 못한 내 편지를 앗아가 버렸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휘날리는 내 편지가 이리저리 부대끼어
갈기갈기 찢어지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이슬비 휘날리던 종각 어디쯤에서 인가
내 마음속의 널 살짝 보려고 조심조심 꺼내어 바라보다
다 보지도 못한 너와의 추억을
실바람이 불어와
훔쳐 가 버렸는데
난 멍하니 바라만 본다.
실바람에 휘날리어
나의 옛 추억이 멍들고 진익여
그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돼 버리도록
난 멍하니 눈물만 글썽이며 바라만 보았다.
어느새 인가 내 모든 것을 앗아간 실바람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꽃을 피우고
그 꽃가지들을 생기 넘치게 흔들어 대고 있다.
살랑살랑 실바람이 불어와 내게 다시
미소를 가져다주었다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니?”
언젠가 네가 내게 넌지시 던진 말이었는데
난 그때 네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이젠 나도 그 의미를 말할 때가 돼 버렸는데
난 아직 그 의미를 사전에서 조차 찾아보지 못했다.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것은 좀처럼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내 머릿속은 언제나 사랑이란 낱말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의 난
내 젊음의 노트를 사랑과 우정의 낱말 풀이로
한 장씩 두 장씩 채우고 있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난 여전히 사랑과 우정을 구별할 수 없었고
그것들을 애써 구분 지어 놓으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난 날 위해 그것들을 애써 구분 지어야 했고
덜 맞추어진 모자이크 퍼즐처럼 보였지만
그나마 내겐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나마 내가 지금 행복하다 자위하는 건
구름 앞에 해를 그린 아이처럼
내가 원해서 짜 맞춘 모자이크 퍼즐이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이 슬프지 않는 이유는
떨어지지 않는 건 낙엽이라 불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낙엽은 떨어질 때 비로소
우리네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이다.
떨어지지 않고 겨울 내내
나무에 붙어 봄을 기다리는 나뭇잎은
봄이 되어 새로운 잎이 돋아날때
빛바랜 자신의 초라한 모습만 더 불거져
몸이 사그라지는 그 순간까지
이미 늦어 버린때를 그리워하며
서서히 사그라져 잊혀질 뿐이다.
그건 단지 썩은 나뭇잎에 불과 하지
아무도
그네들의 가슴에 묻어 주지 않는다.
낙엽은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야 자신의 이름을 들을 수 있지만
그리 슬프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이들 곁으로 떨어져
그네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가을 노을빛과 함께
영원히 묻어주기 때문이다.
낙엽이 슬프지 않는 이유는
떨어지지 않는 건 낙엽이라 불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시간을 다 더한다 해도
내 시간보다 길지 않듯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더한다 해도
내 사랑보다 클 순 없다.
사랑이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서로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자신만의 사랑을
품에 품고 어떠한 순간에도 놓치지 않을 때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순간순간 변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세상이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고
그 시간보다 분명 길 앞으로의 시간 안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우린 그걸 찾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 안에서도 분명 사랑은 존재했으므로
난 내 주위의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는데
넌 네 주위의 모든 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조금만 다가서면 이성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거리감을 느껴야 했고
남의 눈을 의식해야 했다.
사랑이 없는 이들의 세상에서
사랑은 내게 상처를 주었고
그들 역시 내 사랑의 의미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의 이분법으로 쪼개기만 할 뿐
그것들의 본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잘게 잘게 쪼개어
가을날 읽지 않는 시집 속의
책갈피로 쓰고 있다.
우정 안에 사랑이
사랑 안에 우정이
사랑의 종류가 많듯
우정의 종류 또한 많은데
하나도 정확히 모르며
세상은 날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한다.
언제부터인지 내 맘에 싹트기 시작한 사랑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켜져 열매가 맺혀 버렸다.
하지만 널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구나.
내 속에 열린 열매를 보며
이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씩 조금씩 그 정체를 느낄 수 있었고
막연하기만 해서
늘 목말라 우물을 파듯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전부 파헤쳐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감정이었는데
내게 열려 버린 걸 키워 가며
그 전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구나.
그 뿌리가 서서히 내 심장을 파고들어
내가 받아야 하는 고통이 생길진 알 수 없지만
그 해답은 언제나 그랬듯
너만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난 이제 더 이상 네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혼자 알아낼 수밖에
그러고 보니 그때
네게 물어볼 수 없었던 그때
그때부터
난 사랑에 눈을 떴는가 보다.
난 지금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이별을 준비하며
너와의 행복했던 그 느낌과 같은 양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그 슬픔에 버거워 비틀대며
이별의 순서를 정하고 있다.
널 위한 내 사랑이 서툴렀기에
우리의 이별만은
아름다웠다 기억할 수 있도록
너와 사랑했던 순간만큼이나
행복한 마음으로 가끔 미소까지 띠며
아름다운 이별의 순서를 정하려 하지만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이별이 되려는지
널 보내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나와 멎을 줄 몰랐고
너의 뒷모습을 보며 뒤돌아서야 할
마지막 순서를 해낼
용기가 내겐 없었다.
넌 너의 사랑을 찾아 떠나간다며
슬픈 듯 보이는 눈물을 보이며
뒤돌아서겠지만
난 나의 사랑을 떠나보내며
행복을 빌어 주는 듯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설
용기가 내겐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준비한
내 사랑만큼이나 서툰 나의 이별을
잘 지낸다며 우스갯 소리
두어 마디 집어넣어 보내온
녀석의 편지 속엔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두어 마디 글 속에 배어 있었다.
그 속엔 한 숨이 배어 있었고
눈물이 스며 있었다.
난 그 생각에 한숨 쉬며
녀석에게 두어 마디의
우스갯 소리를 집어넣어
보낸 편지가 전부인데
녀석은 나의 한숨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 걱정하지 말라며
건강하다며
내게로 다시 답장을 보낸다.
‘행복한 거 잊지 마’란 말을
막 생각한 듯
추신으로 쓴 답장을 읽는 나 역시
녀석에게 보내는 편지 봉투를 붙이기 전
한번 읽어보다
겨우 추신으로 ‘행복한 거 잊지 마’란
내 맘을 써 보낸다.
외롭고 슬프고 또 외롭고 슬플 때
너의 모습이 떠오르면
나의 마음은 언제나 평안을 되찾는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사랑과 우정을 떠나
세상의 모든 근심과 세상의 모든 희망을 떠나
나에게
너에게
존재하는 믿음만이 존재한다면
이 한 세상 조금의 여유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너와 나의
가치를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해도
너와 내가 믿는 세상은 아직 내 앞에 놓인 술만큼이나
너와 날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만들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이
내 앞에 놓인 술병 속의 술만큼이나
너와 날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믿자
우리의 이상이
이상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우린 그들보다 세상에 덜 취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
젊음도 무서워하지 말고 그것을 품고 당당하게
우리의 몫을 쌓자.
우리의 이상이 현실이 될 그날까지
우리의 몫을 쌓자
세상이 되어 버린 너의 삶 속에서
난 그저 그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 중의 하나였던가 보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거닐던 거리였는데
언뜻언뜻 스치는 실바람이
내 귓불을 내 입술을 간지럽힐 때면
난 언제나처럼
너와 함께 거닐던 길가에 서 있다.
한강 너머 빌딩 숲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며
나의 존재의 이유를 떠올려 보곤 한다.
나의 존재란
네 필통 속의 볼펜일 수 도 있고
네가 지금 신고 있는 구두일 수 도 있다.
난 단지 널 위해 존재했는데
넌 날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대번에 알아 버릴 너인데
난 날 위해 네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슬픔이 큰 사람은
그만한 무게의 기쁨을
가슴에 안고 살기 때문에
슬픔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 없다.
내 가슴이 기억하던 네 모든 기억을
하나씩 둘씩 너와 거닐던 거리를
거닐며 원래의 자리에 떨구어 놓았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 이 순간
내가 버린 그 추억이
내가 주인인 줄 대번에
알아 버려 함부로 내 품속을 파고든다.
시간의 흐름만큼 야위어도 되었을 걸
그 무게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고
난 다시 힘겨워 야위어만 간다.
기쁨이 큰 사람은
그만한 무게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난 그 큰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
내게 다시 돌아온 슬픔을 추억이라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