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34 서점원의 광주 여행
반찬이 흘러내릴 정도로 가득 담긴 쟁반을 힘껏 내어주는 주인아저씨.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지만, 유독 여행 중에 맛있는 집을 찾으려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한다. 도대체 미리 메모해두었던 밥집 리스트는 어디로 간 거냐. 노트를 뒤적여도 찾지 못할 때에는 결국 역 근처의 기사 식당을 찾는다. 이미 장부를 달아두고 식사 후 자연스럽게 퇴장하는 기사님들과 동네 주민들, 밥 먹으러 혼자 와도 어색해하지 않고 겸상하는 분들이 섞여있는 식당에 왔다. 전라도의 밥상스럽게(?) 차린 것이 많다.
심지어 부족한 반찬을 더 달라고 고민하던 찰나에 모자라 보이는 반찬 그릇을 스윽 가져다준다. 한 끼에 육천 원을 받는 이 집에는 도대체 뭐가 남을까나. 반찬 재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말이 의심스러운 기사 식당은 매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큰 실망을 주지는 않을 기사 식당.
가볍게 밥을 먹으러 가더라도 공간의 분위기와 일하는 분들의 태도를 관찰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사실 음식 맛보다도 그 날의 날씨를 비롯해 함께 하는 이와 어떤 기분을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창가에 앉아 복잡한 도로의 차들이 아슬아슬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음식을 기다리고, 한 숟가락씩 번갈아가며 함께 하는 이는 잘 먹고 있는지 살폈던 날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너무도 특별했던 날이다. 생일보다 더 생일 같았던 날,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은 그릇을 채우고도 넘쳤다. 단언컨대, 내가 만났던 화장실 중에서 가장 작은 공간임에 틀림없다. (결국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지만)
서점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서점의 수익이 충분하지 않아 여백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마음을 아는지, 많은 분들로부터 강연 초대를 받기도 한다. 누구보다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트리플 에이형으로, 일곱 살 때 웅변학원 일 년 다니고 누구에게나 주는 장려상을 받은 것 말고는 딱히 말을 하며 돈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또래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고, 누군가와 말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몇 가지의 소셜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대전 원도심에 '여행자 카페' 콘셉트의 공간을 운영한 것. 벌써 내년이면 10주년인데, 흘러간 시간 덕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고, 새로운 사람들이 남았다. 서점원과 기획자, 때로는 강연자로 불리는 것이 다소 불편할 때도 많지만, (내가 이것을 이야기하고 이 정도의 강연비를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도 개인적인 고민) 그럼에도 받는 강연비만큼, 많은 것을 전하기 위해 고민을 더한다. 그러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새거나 쓸 데 없는 이야기를 전할 때도 있다. 너무 솔직해서 불편해하는 단체도 여럿 있었다. (더 이상 불러주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 그렇겠지)
지난 2월부터 예정되어 있던 강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공간의 월세와 가계에 노란불이 들어왔는데, 이제 조금씩 풀리고 있던 참이었다. (대전은 코로나로 인해 다시 서로를 경계하며 걱정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광주의 문화 기획자 그룹으로부터 받은 초대는 예상하지 못했던 환대와 친절함으로 가득했다.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 도시의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광주에 사는 기획자 청년들을 만나며, 또 다른 이미지의 광주를 가지고 돌아왔다. 광주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청년의 질문에 "광주에는 매력적인 건축물과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으로 정말 매력적인 친구들이 많은 도시다.
도시에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도시라는 것. 이들의 불가능한 꿈이 지역에 다양한 문화예술기획으로 실험되고, 지속가능한 삶을 찾기를 바란다. 결국엔 우리, 도시의 꿈이 되어버리니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로맨틱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