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별하 Apr 22. 2022

 ​봄이 머물다 가는 산책길

꽃구경을 시켜주네요.

예년보다 빠르게 피어오른 벚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던 모습을 보고 있던 동기는 오늘따라 슬픔이 담긴 듯 유난히 감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꽃이 예쁘게 떨어지네, 오늘이 지나면 이제 꽃구경은 못할 것 같아. 비 온대"


"비 오면 꽃잎이 다 떨어질 거 아니야? 그럼 우리는 꽃구경도 한 번 못하고 지나가겠네"


예쁘게 피어난 꽃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기에 아쉬운 듯 그렇게 시작된 대화로 점심 산책이 결정되었다.

빠르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뒤로 펼쳐진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기분이 좋은 지 연신 콧노래를 불러대며 쉴 틈 없이 노래 사이사이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이고, 너무 예쁘다. 이렇게 예쁜 것을 못 보고 지나갈 뻔했잖아"

"세상에, 저것 봐. 어쩜 색깔이 저렇게도 예쁠까? 보여? 보이지?"

"나오길 잘했다. 이것 봐 하늘 색도 너무 이쁘다"

"나는 이렇게 예쁘고 많이 핀 개나리는 처음 봐, 진짜 예쁘다 그렇지"


길가 높은 담벼락 사이에 늘어진 개나리를 보며 연신 감탄을 하며 이런 개나리는 처음 본다고 꽃잎이 너무 이쁘다고 난리다.


"동백꽃이 이런 꽃도 있어? 이것 봐봐, 모양이 특이해!"


정말 동백꽃 모양이 특이하다. 겉 꽃잎 안으로 속에 여러 송이가 뭉쳐있는 모습이 처음 보는 동백꽃 모양이었다. 우리 둘은 '이런 꽃 처음 본다'며 맞장구를 치며 계속 '이쁘다, 너무 이쁘다'라는 말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떨어지는 꽃잎 자국이 남겨진 자리에 초록색 잎이 돋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말했다.


"다음 주에는 꽃이 하나도 없겠다. 오늘 아니면 못 볼 뻔했어.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보이는 초록색을 보며 '참 잘 나왔다'며 나오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아니면 나에게 맞는다는 답변을 요구했다. 다음 주에는 벚꽃은 다 떨어질 모양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며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도 옆 둔덕에 피어난 진달래를 본 모양이다. 또다시 감탄사 연발을 해댄다.


"어머, 어머, 여기 봐, 여기도, 아이고 예쁘다!"


더 좋은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아니면 더 이상의 표현이 필요가 없는 듯이 연신 '아이고'를 반복한다.


주어진 시간 30여 분이 지나가기 전에 아쉬움은 남겨놓고 돌아서는 길에 잔잔한 바람이 기분 좋은 한들 거림을 만들어 준다. 춤을 추듯이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벚꽃잎에 손을 펼쳐 놓았다. 살포시 내려앉은 벚꽃잎이 여리여리 소박하다.


"이거 봐, 떨어지는 꽃잎을 잡았어!"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행여 날아갈 새라 조심조심 펼쳐 보였다.


"정말?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 좋겠다. 첫사랑도 이루어지고..."


순간 둘이서 얼굴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첫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떨어지는 꽃잎을 잡겠다며 폴짝거리며 여기저기 나뭇잎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짓궂은 바람은 어디 한번 잡아보라는 듯이 살랑거리지 않고 조금 세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에 움직이다 폴짝거리는 바람에 움직이다 꽃잎은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제법 지친 모양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바람이 약해지더니 조금 잠잠해졌다. 그 사이 다시 가만히 손을 뻗어 꽃잎 아래 손바닥을 펼치니 꽃잎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나도 잡았어! 이제 나도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어!"

"벌써 이루어진 것 아니야? 또 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시 꽃잎을 하나 더 잡으려는 나에게 말한다.


"첫사랑이 또 있어? 그만 잡아야 해!"


책갈피에 꽂아서 말리려고 잡으려는 나에게 이제 그만 잡으라고 난리다. 한바탕 또 웃기 시작한다. 웃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 우리는 오늘 꼭 여고시절 소녀 같다.


"우리 이거 책갈피에 꽂아서 잘 말려보자"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움켜쥐며 꽃잎이 행여 망가질까 봐 오는 내내 손을 계란을 쥔 것처럼 조심스레 둥그렇게 웅크렸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다이어리를 꺼내 꽃잎을 곱게 펼쳐놓고 그대로 덮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후드득'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문을 열고 보니 한여름 장맛비처럼 폭우가 쏟아진다. 도로는 갑자기 쏟아지는 물줄기를 미쳐 다 내려보내지 못해 가득 고인 물을 품은 채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 사이로 물보라를 일으킨다.


"우리 꽃구경 못할 뻔했다. 오늘 잘했네. 오늘이 지나면 다 떨어져서 못 보게 됐잖아"


오늘 산책이 제일 좋았다며, 비가 오니 이제 꽃을 볼 수 없게 되었다며, 잘 갔다 왔다며 계속해서 꽃구경 얘기를 한다.

봄이 머물다 가는 산책길에 살포시 그 옛날의 '소녀'를 만나고 온 것 같다.



꽃잎과 마중 나온 이파리
진달래꽃 사뿐히..
군산 월명산 벚꽃 터널 1
군산 월명산 벚꽃 터널 2
수북이 피어있는 개나리꽃
떨어진 꽃잎은 고이 책갈피에 꽃아 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