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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일상

잠잠해진 하루

by Shu

어느새 나의 삶은 잠잠해졌고, 이제 곧 다시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민지를 포함한 나머지 아이들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날 때였고, 나민이를 사방에서 공격하듯 폭력보다 더 큰 무시를 보였다.

나민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에서 내려간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고..

마침내 우리는 빈대 같던 나민이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나민이와 연을 끊은 날은 11월 후반쯤이었다.

당시에는 과목별로 마무리 수행평가를 하고 방학식을 준비하느라 한창 바쁠 때였다.

나와 희지, 여정이, 민지 또한 그랬다.


그때는 하나 남은 미술 수행평가를 위해 4명끼리 조를 짜야할 때였는데...

나민이는 이 날 병원 검사 탓에 학교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잘 된 것 아니냐며 잔뜩 들떠 서류에 하나둘씩 제 이름을 적어 나갔다.


문제는 나민이가 돌아온 후에 발생했다.

나민이는 우리가 먼저 조를 정했다는 것을 알고 멍하니 교실 벽에 붙어있는 서류만 바라볼 뿐이었다.

나민이도 속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은 용서받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낄 틈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민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나민이가 스스로 제 앞날을 정하길 바랐다.

나민이는 우리의 친구도, 이야기의 엑스트라도 아니였으니까

나민이는 그런 우리를 무시한 채 제 할 일만 했다.


그렇게 수행평가 날이 다가오고..

나민이는 끝내 조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고서는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바로, 다른 아이들과 조를 짜는 것 대신 선생님께 따로 말씀을 드려 우리와 함께 앉는 것이다.

우리와 어느 정도 어색함이 달래져 있기에 우리와 앉는 것이 나민이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에는 지금 짜인 조를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상황에서 나민이 혼자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마 나민이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나민이는 1학년의 절반 이상을 출석하지 않았던 아이니 말이다.

그놈의 적응이 뭔지.... 우리를 혼란에 빠트릴 뿐이었다.


나민이가 미술 선생님께 따로 말을 건넨 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점심시간에서였다.

점심시간, 1시간의 여유를 두고 나민이는 미술 선생님을 찾아갔다.


미술 선생님은 밝은 갈색의 풍성한 파마를 하고 있는 키 작은 여성이었고, 뭔가 괴짜 같은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나민이는 그런 미술 선생님께 반 벽에 걸린 서류를 펄럭이며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을 민지가 두 눈 하나 안 깜빡이고 전부 보고 들었다.


우리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2학년에 올라와 잔뜩 찌그러진 나민이가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다시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도 정도껏 더러울 텐데... 나민이는 그런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민지에게 나민이에 대한 행동을 고발받은 직후, 우리는 당장 나민이에게 찾아갔다.

그러고서는 나민이에게 따져댔다.


나민이는 평소 우리가 주로 휴식하는 7반 옆의 계단에 앉아 서진이와 대화 중이었다.

여정이와 민지, 난 그런 서진이와 나민이 앞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그리고서 곧이어 여정이의 밀어붙이기가 시작되었다.

여정이는 따갑듯 차분한 말투로 열 올라 잔뜩 밀어붙였고, 곧 나민이는 눈물을 보였다.


나민이 옆에 앉은 서진이가 나민이를 달래봤지만 역부족인 듯싶었다.

잘 익은 사과 마냥 얼굴을 빨갛게 하고서는 살집있는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우는 나민이에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였다.

나민이는 그대로 담임선생에게 가 자신이 피해자인 것 마냥 일러바친 것이다.

자신의 팔을 붙잡고 울면서 내가 자신의 팔을 때렸다며 상처가 생겼다고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곧바로 우리는 나민이에게 가 따졌다.


" 네가 선생님께 가서 우리 잘못만 얘기했다며? 네가 피해자인 것 마냥.."


그러자 돌아온 나민이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어, 쌤한테 말했어. 그리고 내 잘못은 너희가 알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려."


우리는 나민이의 추악한 말과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민지를 불렀다.

민지는 허탈한 표정으로 텅 빈 사무실로 선생님을 따라갔다.


시간이 지나고, 민지는 영혼이 빨린 듯한 얼굴을 한채 사무실에서 나왔다.

민지는 우리에게 별 말을 해주지 않았다.

아마 선생님이 입을 열지 못하게 시킨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나 또한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기 전...

우리는 다 함께 다시 나민이를 찾아갔다.

나민이는 서진이와 함께 교실 앞문에서 함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 나민이의 앞까지 다가가 나민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민이는 예상치 못한 우리의 행동에 놀란 듯 보였다.

우리는 나민이에게 선생님과의 대한 일과 나민이 본인의 과거 행동에 대해 다시 따져 묻고 있었다.

나민이는 평소의 행동과 달리 잔뜩 쭈그려져 점점 뒤로 물러섰다.

다툼을 시작한 지 1분도 안되어 나민이와 내 앞을 서진이가 가로막았다.


" 이.. 이제 그만해! 나민이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난 순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서진이 표정을 살피니 매우 진지한 듯했다.

왜인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나민이를 지키려 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내가 다시 나서려는 순간에 민지가 날 뒤에서 말렸다.

때문에 난 나민이에게 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상담 차례가 다가왔다.

난 죄인인 것 마냥 사무실로 끌려들어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극도로 압축된 긴장감과 부담이 한순간에 밀려 들어왔고, 눈가가 뜨거워 짐과 동시에 사람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난 이런 자리를 싫어했다.


"네가 나민이에게 가장 큰 악심을 품었다고 생각해, 다른 아이들에게 나민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니?"


"네"


솔직히 나민이를 욕한적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난 나민이가 나에게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질렀는지... 그런 일을 벌이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떵떵거리고 사는지, 누구 하나라도 알아줬으면 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퍼트리고 다니지 않았다.

나도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냥 억울해서 그런 것뿐이었다.

그 아이 때문에, 그 한 명 때문에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힘겹게 다시 일어섰는지 누군가에게는 꼭 말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담임선생이 다시 말을 꺼냈다.


" 내 생각에는 네가 나민이를 질투해서 그런 것 같아."


난 그 말에 심히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당해 보이는 그 어른의 얼굴에 함부로 대들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아 보여 횡설수설하며 변명만 할 뿐이었다.

난 담임선생의 말 뜻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리고 내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도 잘 안다...


마지막으로 여정이의 차례가 다가왔다.

여정이는 나민이에게 따지는 식의 말을 몇 번 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문제에 크게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여정이의 상담 시간은 매우 짧았다.


여정이는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눈물을 보였다.

난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어째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

뭐가 그렇게 가슴 한켠을 울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한 곳에 숨기고 남은 학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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