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싸움은 그다지 완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사과도 없고 용서도 없는 싸움이 해결될 일은 없는 게 당연했다.
난 아빠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로 했고, 아빠는 그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는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사실 전부터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을 계기로 아빠와 완전히 엮이지 않게 되어 좋다고 할 수 있다.
저번의 일은 뒤로 하고, 난 드디어 내 15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서진이는 저번에 내가 자신의 생일 파티를 주도해 열어준 것이 고맙다며 내 생일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서진이네 집에서 하는 작고 소소한 생일 파티였다.
오늘의 멤버는 진희, 강훈, 지훈, 민지, 서진이었다.
모두들 나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시각에 난 지훈과 함께 서진이의 집 앞에 도착했다.
서진이는 문을 열고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곧이어 내가 보게 된 광경은 정말 놀라웠다.
강훈이 노랗게 불붙은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초가 점점 녹으며 촛농이 케이크 위에 떨어졌다.
강훈은 가운데 손가락을 내게 내밀고는 욕을 해댔다.
난 귀를 막으며 입으로 초를 불었고, 초는 내 입바람에 못 이겨 뿌연 연기를 내뿜고 꺼졌다.
다들 내 소원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난 소원을 발설하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소원을 말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테이블 앞에 둘러앉고, 각자가 준비해 온 선물을 공개했다.
먼저 진희는 작은 상자에 보드게임과 DIY키트, 간식등을 넣어서 선물해 줬고, 강훈은 큰 보드게임 하나를 선물로 줬다.
서진이는 대용량 젤리 봉투를 내게 주었고, 민지는 생일 케이크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다들 평범하고도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었다.
이런 선물들에 감동해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어째선지 내 남자친구라는 지훈의 손이 가벼웠다.
그렇다, 지훈을 요리조리 살펴봐도 내 선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지훈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내 선물은 너무 커서... 내일 아침에 갖다 줄게."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콜라 컵을 홀짝댔다.
난 웃으며 지훈을 바라봤다.
큰 선물이라...
선물이 무엇인지 말조차 안 해주어 내 상상력으로 선물을 그려내게 만들었다.
내 상상 속 선물...
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 내 생일 선물로 적합한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내 생일 선물이라...
나에게 맞는 생일 선물이란 건 뭘까?
난 지훈에게 생일선물에 대한 힌트를 달라고 했지만 지훈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의아했다.
모두들 케이크 앞에 둘러앉아 케이크 조각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접시가 부족해서 종이컵에 담아 먹긴 했지만 맛은 더 좋았다.
난 생크림맛 케이크를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고, 남 이야기든 본인 이야기든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 스쳐 지나갔다.
하긴, 남 이야기에 관심이 많을 때인 나이였으니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케이크를 다 먹고 난 후,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내 생일파티가 이렇게 끝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민지는 전부터 언제 집에 가냐며 툴툴 댔으니까.
그런 민지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난 지훈과 함께 내 집으로 향했고, 어찌어찌 그렇게 내 생일 파티를 마쳤다.
다음날, 지훈이 우리 집으로 왔다.
발걸음이 가볍지는 못한 게 등에 무언가를 매고 있다.
그것은 단순 가방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큰 가방이었고, 세로로 길이가 꽤 길었다.
"이게 뭐야?"
"기타야."
지훈은 내게 통기타 가방을 내밀었다.
묵직하고 안에서 덜컹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난 가방을 힘겹게 받아 들고는 내 방으로 향했다.
지훈도 나를 따라 현관문에 들어섰다.
난 가방을 침대 옆에 두었고, 그 후 다시 지훈이 있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기타 비싸지 않아?"
"글쎄... 7만 원 밖에 안 하는데 비싼 건가..?"
"진짜? 그럼 다행이긴 한데..."
"너 요즘 기타 치잖아. 기타 관리랑 레슨은 내가 평생 공짜로 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사실 난 전부터 기타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지훈이 기타를 가르쳐 준다고 했고, 난 지훈이 가져온 반짝이는 일렉기타를 처음 쳐보게 되었다.
짜릿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언제나 흥미롭고 좋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진동, 살을 파고드는 최철 끈, 치는 대로 달라지는 소리.
처음이라 어설프고 서툴러도 이해해 주는 듯한 소리도.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었다.
지훈은 이런 나를 보며 들떠 있었다.
"이제 넌 내 제자 3호야!"
라며 이상한 호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지훈이 내게 기타를 가르쳐 줄 때면 우리의 호칭은 제자, 선생님으로 정리되었고 잘난 듯 입꼬리를 올리는 지훈이 조금 얄미웠지만 그의 기타 실력에 난 가까워질 수 없기에 그냥 아픈 손만 열심히 움직일 뿐이었다.
지훈은 나를 보며 내가 진짜 자신의 제자라도 되는 듯 흐뭇하게 웃었고, 나도 그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난 지훈에게 통기타 하나를 받고 이제 집에서 편하게 기타를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지훈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절을 했다.
곧 주차장에 하얀 승용차가 들어오고, 차에서는 엄마가 내렸다.
엄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바로 차에 태웠다.
내 생일날을 위해 외출하자고 하는 엄마를 보며 차에 탑승했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외출에 나와 지훈은 살짝 불안했지만 별 수는 없었다.
창 밖을 보니 벌써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왜인지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져서 잠이 쏟아졌다.
댐으로 막고 있던 많은 물이 댐이 무너지며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댐을 막을 새도 없이 난 잠에 들었고, 지훈도 나를 따라 잠에 들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을 떠보니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막혀 있었고 창 밖 풍경은 낯설었다.
"여기가 어디야..."
막 잠에서 깬 내가 눈을 비비며 말하니 지훈이 내 말에 답해줬다.
"바다 같은데."
우리는 바다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과 상가들이 뚜렷하고 어둠과의 경계가 보이듯 그 뒤로 흑백 도시가 보였다.
가게 마다는 밝은 빛이 나와 거리를 비췄고, 바다는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바다, 그 물결도 상가 거리 빛에 비춰 물결 위에 빛을 띄웠다.
난 이 거리를 보며 알 수 없는 익숙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추억팔이하듯 머리를 굴리게 되는 거리이다.
저 멀리서 다채롭게 빛나는 놀이기구의 빛도, 하늘에 보이는 두꺼운 레일도.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난 지훈에게 이곳에서 유명한 바이킹을 타자고 했지만 지훈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음... 나 놀이기구 안타. 무서워서 어렸을 때 한번 타고 안 탔어."
난 그런 지훈에 좀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맨 땅을 걸었다.
지훈도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비 맞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내리고서 눈치만 봤다.
그런 지훈에 난 서운한 마음도 녹고 그냥 이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이곳은 시골 동네와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나와 지훈은 거리를 걸으며 조개의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도 폭죽 사면 안 돼?"
"안돼, 위험하잖아. 어차피 불도 못 붙이는데 뭘."
지훈은 폭죽을 사겠다는 나를 말렸다.
지훈은 쓸데없이 걱정만 컸다.
"너 라이터 가지고 다니잖아."
"아닌데. 너 날 뭘로 보는 거야..?"
난 저번 서진이의 생일파티 때 지훈이 케이크 초에 불 붙이는 용도로 가져온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난 웃으며 지훈을 놀려댔다.
지훈 또한 나를 보며 웃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우리는 다양한 게임과 놀이를 하며 내 생일날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엄마가 쥐어 준 카드를 가지고는 흥청망청 써댔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돈 한 푼 없는 우리에게 카드를 맡겼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지훈은 이러다가 혼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절대 그럴 일 없다.
이제 가게들은 하나둘 씩 문을 닫고, 거리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지훈은 내게 차로 돌아가자며 주차장으로 날 데려갔다.
좀 아쉬운 마음이 남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차에 올라탄 뒤, 다시 눈을 감았다.
공허한 어둠만 존재하던 그때, 지훈의 집에 도착했고 지훈은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가..."
정신이 몽롱한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은 안되지만 그렇게, 내 생일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