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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3. 멀어졌을 뿐, 떨어지지는

by 김카잇

내가 서울로 오게 된 것은 가족의 영향도 있다. 내가 꼭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하는 이유였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대기업이 아닌 곳에도 지원서를 넣어보기로 했다. 그 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지원한 곳에 덜컥 합격해 버렸다. 원하던 업계도 아니고, 급여도 적고, 3일 만에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옮겨야 하는 무리한 일정. 그럼에도 일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그중 남들한테 말하기도 부끄러운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가족과 멀어지고 싶어서’였다.


생각해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 가족과 멀어지려는 시도를 했다.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엄마가 가장 먼저 집을 나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웃 아주머니들께서 돈도 빌려주시고, 아이들은 걱정 마라 따뜻한 말도 해주시면서 엄마의 탈출 계획을 많이 도와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온 동네가 아빠의 폭력성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삼 남매가 집을 나가는 것은 달랐다.


형, 동생이 아빠에게 반항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가출이었다. 그러나 학생이었던 우리는 돈도 힘도 없었고, 조력자 역시 친구들뿐이었다. 친구 집에 잠깐 숨어 지내는 건 가능했을지 몰라도, 친구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동네 어른들도 엄마가 탈출할 때만큼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형, 동생의 가출은 잠깐의 일탈로 끝이 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가출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재밌는 것은 동생이 가출하면, 형도 동생을 잡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형도 가출을 해봤던 입장에서 동생이 왜 가출했는지 알 텐데. 오히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걸 몸소 느껴봐서 그랬던 걸까.


아빠도 가족과 멀어지기 위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찜질방에서 하루 묵을 수 있는 돈마저 없어졌을 때. 아빠는 우리 가족 모두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취하는 같은 반 친구 몇 명에게 부탁해 얹혀살게 됐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친구 집에 얹혀사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빠는 내가 친구랑 살고 싶어 해서 친구 집에 가서 살았다고 주장한다. 엄마는 집을 나갔지만, 아빠는 평생 우리 가족을 지켰다는 마지막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빠와 엄마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은 그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어졌을 뿐 떨어지지는 못했다. 나도 가족과 멀어지고 싶을 뿐,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나, 그리고 가족을 때로는 이해하고,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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