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음의 변주곡

새글김경진에세이시

by 새글

썩음의 변주곡



자정이 지나기 5분 전, 얼핏 든 잠을 전화벨 소리가 깨운다.

"썩어서 알았어요."

취기가 오른 목소리가 뜬금없다.

"말을 해야지요. 썩기 전에는 몰랐어요."

며칠 전 햇두릅이 나왔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삼겹살집에서 마주 앉아

서로의 오랜 안부를 소주잔에 부어 마시며 비 내리는 늦은 밤에야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했던 지인의 목소리가 후줄근하다.

셋이서 먹다 남은 두릅을 싸서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쥐어주던

동생의 가시 긁힌 손목까지가 기억난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일찍 꽃을 피워낸 벚나무를 괴롭히는 밤이었다.


"오메. 꽃이 싹 다 떨어져 불 것네."

앞 유리창에 비와 섞이는 꽃잎을 와이퍼로 긁어내며

대리운전기사가 감흥 없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이야기들에 독하게 취해 까무룩 선잠이 들었을 것이다.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서로의 이야기는 소주의 맛에

잘 섞이지 않는 쌉싸름한 두릅 맛이었다.


말해주지 않으면 누구든 자신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스스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은 실없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술기운과 잠 기운에 두릅이 담긴 봉지를 차 뒷자리에 놓고 내렸다.

다음날이라도 알려줬으면 될 것을 자연스럽게 차를 타고 내리다 보면

발견하게 될 것이란 건성건성 한 생각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가져다주었으리라.

운전석 의자 밑으로 떨어져 들어갔나 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다른 수단이 없다면 발견되지 않게 된다.

필요에 의해서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존재감도 부정된다.


썩는 냄새가 차 안에 진동을 해서 세차를 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파랗게 데쳐져 먹음직스럽던 두릅은 누런 곰팡이가 슬고 비쩍 말라서

검은 관 같은 봉지에 둘둘 말려 있었으리라.

썩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온 힘을 다해 고함치고 있었으리라.

"아따, 차에서 냄새 빼느라 고생했어요."


잘 썩은 내를 내면서 살아야지. 그래야 잊히지 않고 찾음을 당하게 된다.

지독하게 썩으며 살아내야 알아준다는 아이러니가 당연한 시간을 산다.

"사는 것이 썩어가는 일 이제요. 시간이라고 안 썩겠어요.

놔두면 썩을 것 시간 내서 다시 한잔 하십시다."

건성으로 그러자고 말을 받아주며 나는 잘 썩어가고 있는지 냄새를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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