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의 참회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눈 내리는 날의 참회


눈발이 햇살처럼 빛을 내며 날립니다.

아직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숫눈의 길을 걸으며

입김으로 축축해진 마스크를 벗고

뜨거워진 콧잔등에 내려앉아 수화(水化)되는 순간의

눈송이의 간지럽힘을 느껴봅니다.

바라는 바가 많은 시간만 살아왔나 봅니다.

조금의 불편이 생기면 더 많은 편안을 얻어내려 했습니다.

부족을 채우지 못하면 빼앗김을 당했다고 분해했을 겁니다.

땅에 내려서 쌓일지라도 남아 있기를 고집하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자리를 내주는 눈의 운명이 경건하게 보입니다.

녹아 스며드는 눈 내림을 콧김으로 느끼면서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뒤돌아서서

반성하지 않는 삶처럼 불규칙하게 찍혀 있는 발자국에

참회의 기별을 전하듯 일일이 눈을 맞추며 합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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