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견적서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이별 견적서


책임을 따지고 들수록 세세한 항목이 늘어납니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추억의 가치가 치솟습니다.

그때, 그곳에서의 그 시간이 핏줄기 속까지 파고듭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별은 없습니다.

이별은 사랑을 한 사람만이 경험하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되풀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특권입니다.

서러운 기운의 침범을 이겨내기가 난해하고 심난할 것입니다.

생애에서 받는 견적서 중에 승인하기가 가장 두려운 작업입니다.

지나간 기억의 필름을 되돌리고 돌려봐도

결국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랑의 개시와 꾸림이 나에게서 비롯되었듯이

이별의 단초와 파국도 나에게서 파생됩니다.

왜, 언제부터 분란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얼마나 감정에 균열이 생겼는지.

견적서의 항목마다 미안해라고 사인을 해둡니다.

끝이 난 이별 견적서는 재시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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