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시
에어컨을 끄며
계절의 계단을 넘는 간절기가 느린 듯 하지만 기어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습니다. 무겁던 공기가 습기를 증발시킨 채 건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빛을 퇴화시키며 들판의 나락들이 가을맞이를 서두릅니다. 열대야를 일삼던 날씨가 하룻밤만에 고열의 괴롭힘을 멈추었습니다. 온도의 무게를 줄인 햇빛의 따가움은 견딜만해졌습니다. 달아올랐던 피부가 진정되고 있어 살만해졌습니다. 가을이 목전에 와 있습니다. 여름 내내 실내의 더위를 정화시키던 에어컨을 이제는 꺼야겠습니다. 예기치 못할 한때의 더위를 막아내기 위해서 선풍기 한대는 치우지 않고 예비장비로 놓아두기로 합니다. 얇은 긴팔옷을 꺼내 옷장의 전면으로 배치를 합니다. 변덕이 심한 간절기의 날씨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팔셔츠와 번갈아 입어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같은 계절을 맞이할지 모르겠지만 가을은 매번 맞이할 때마다 새롭습니다. 손때가 묻은 리모컨 전원버튼을 눌러 끄고 서랍 속으로 여름을 밀어 넣습니다. 찬바람에 시달리면 빠져들던 외로움병을 이겨내려 고생하던 계절앓이를 이번 가을에는 그만두어도 되겠습니다. 화분에 물을 주며 아래카야자나무에게 다감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바빠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