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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28. 2018

항아리는 깨질 때까지 계속 우물로 돌아갑니다

#97

습관이란 참 무섭습니다. 고치기 힘든 습관이 또 발동하여 오늘 읽을 성경책을 쑥 밀어놓고 영화 <르 아브르>를 봤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해서 과연 파도가 칠까 싶은 마을에 큰 소문 안 나게 사랑을 나누고 나눔을 했다는 것조차 잊으며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항아리는 깨질 때까지 계속 우물로 돌아갑니다.”


구두닦이 아저씨 마르셀은 일할 때 입는 옷 한 벌, 푸른색의 양복 한 벌, 녹슨 깡통 속의 동전 몇 개와 몇 장의 지폐, 병든 아내, 강아지 한 마리가 전 재산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엄마를 찾아 영국으로 밀항하려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불시착한 흑인 소년 이드리사가 나타납니다. 배회하는 형사 모네의 눈을 피해 마르셀이 음식을 바닷가 바위틈에 놓고 오면 이드리사는 물속에 숨어 있다가 목만 내밀어 음식을 먹습니다.

숨겨주는 동네 빵집의 여자, 딸아이 결혼비용을 내놓은 카페의 여자, 채소 수레 아래 이드리사를 감추고 영국으로 떠나는 배까지 이동하는 채소가게 아저씨, 그 뒤를 따르는 형사 모네. 자그마한 동네의 이야기인데 한 소년을 위해 그처럼 조용하면서 적극적일 수가 없습니다. 뱃전에서 들킨 이드리사를 형사 모네는 힘들어하며 모른 척 그냥 보냅니다. 이드리사의 착함이 그득한 검은 눈동자에서 흐른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동네는 이드리사라는 낯선 소년이 있었나 싶게 다시금 여전히 조용합니다. 마땅히 한 일, 사랑의 힘이 물 흐르듯이 흐르는 마을입니다.


이드리사는 먼저 떠난 엄마를 만나러 할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밀입국했고, 컨테이너 속에서 형사들에게 잡혔을 때 할아버지를 두고 뛰었습니다. 마르셀이 본국으로 송환되는 할아버지를 이민자 숙소에서 만났을 때 앞일을 묻자 할아버지는 ‘이드리사가 꼭 엄마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 얼굴은 주름투성이고 이는 빠졌으나, 두 눈을 단호히 똑바로 뜨고 먼 산을 바라보며 “항아리는 깨질 때까지 계속 우물로 돌아갑니다”라고 말합니다.


마르셀이 물속에 숨어 있는 이드리사에게 음식을 전하는 바위틈새, 그곳에 마르셀의 마음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 ‘평화의 소식’을 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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