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계약 사이에서
이혼을 원하는 친구가 있었다. 결혼생활이 자타공인 좋지 않았는데, 남편이 이혼 생각이 없는 불행한 경우였다. 친구가 더 불행했던 것은, 남편이 돈도 벌어오고 도박도 안 하고 바람도 안 피우는 것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이혼에 대해 묻길래, 이혼 청구를 해도 법원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답해줬다. 그러자 '어째서 법원이 개인의 관계를 결정하냐. 개인이 평생 불행해도 그냥 살라는 거냐.'라고 말하길래, '결혼을 계약이라고 봐라. 한쪽이 싫다는 이유로 계약을 물러주면 잘못이 없는 상대방에게는 그게 변고 아니냐'라고 답했다. 친구 사이에 너무 매몰찼나 싶어서, '요새는 결혼생활이 깨져서 더 이상 같이 못 살 것처럼 보이면 이혼을 받아주기도 한다'라고 덧붙이기는 했다.
집에 와서도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났다. 결혼이 과연 계약이기만 할까.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 아닌가. 원래 사랑이란, 봄날이 가버리면 이영애처럼 훌쩍 돌아서고, 유지태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원망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또 있다 보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서 이전의 사랑은 잊혀지던 것 아닌가. 사랑하고 잊혀지고,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차가웠다가 뜨거워지는, 돌고 도는 사랑이, 결혼이라는 계약 아래 들어오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럴 거면 사랑만 하지, 결혼은 왜 하냐?'라고 돌을 던질 것이다. 그 말이 맞다. 마음대로 뒤돌아 설 수 있는 자유의 카드를 갖고 싶으면 결혼을 하면 안 된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이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어서 집안에서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피우는 일도 오히려 더 많았지만, 바람을 피웠다 하여 헤어지는 일도 없었다. 이혼을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았으니, 기대로 인한 감정적인 상처도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보통의 일이 되면서, 그만큼 결혼이 주는 행복감도 더 말랑말랑하고 화사할 테지만, 감정이 식어버리는 자리에 남는 그 감정적인 헛헛함, 남 같은 가족으로 살아가는 외로움도 더 선명해졌다. 그래서 이 불행한 상태를 단지 '결혼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법률적으로 정리를 도와주어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건지 의구심이 생긴 된 것이다.
대법원의 원칙적인 입장은 잘못이 있는 당사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15년 째 별거 중인 부부의 이혼 청구 소송에서, 이혼을 원하는 당사자는 파탄주의에 따라 실질적으로 파탄에 이른 혼인을 종결시켜 줄 것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잘못이 있는 당사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귀책주의'에 따라,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최근 아래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이혼 청구를 받아주기도 한다.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나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므11112 판결 [이혼등])
이 대법원 케이스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부부는 13년 이상 별거 중으로, 남편은 이혼을 원하나, 아내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내에게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진짜로 있는지와 관련하여, 아내는 긴 별거기간 동안 남편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이혼 과정에서 오히려 양육비에 대한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면 이혼을 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남편에게 한 점이 참작되었다. 또 남편은 별거하면서도 아내와 자녀가 거주하는 아파트 대출금을 계속 갚았고 아파트 관련 세금을 납부하기도 하는 등,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므로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결혼은 제도이기도 하고 계약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의 약속이다. 결혼은 매매계약이나 근로계약과는 차이가 있다. 매매계약,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당연히 좋다. 그러나 매매계약이나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것이 계약의 파토를 결정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다르다. 사람이 싫어지면 할 수가 없고, 대부분 모두가 불행하다(이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불행한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나는 궁극적으로는 법원이 파탄주의를 기본 입장으로 변경하여 이혼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신에 잘못이 있으나 이혼을 원하는 자에게는 고액의 위자료나 재산분할, 양육비를 선고하는 것으로 책임을 지게 하면 어떨까. 그러나 나는 다시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힌다. 그럼 돈이 없으면 어떡하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모자라서, 돈이 있으면 이혼도 유리한 세상이라, 그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