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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단팥빵 사장님이 한 생각의 권리

  우리집 아홉살, 여섯살이 하는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다. 내 입장에서는 저런 아무 것도 아닌 소재로도 저렇게 진지하고 치열하게 다툴 수 있구나 라는 뜻밖의 발견이다. 싸움에는 여러 가지 원인과 패턴과 결말이 있지만, 싸움을 부르는 주된 상황 중 하나는, '왜 내 말을 따라하느냐'에서 시작된 갈등이다. 싸움의 양상을 보면, 주로 아홉살이 하는 말을 여섯살이 따라한다. 그러면 아홉살은 매우 불쾌해하며, 내가 먼저 생각해서 말한 것인데, 동생 니가 무슨 권리로 내 말을, 생각을 따라하느냐고 따진다. 생각하고 표현하는 지식재산의 권리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비록 배운 바는 없으나, 태생적으로 느껴주니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과학자, 화가, 작가는 자신들의 '발명', '그림', '책'에 대해서 권리를 가진다. 또 디즈니사는 '미키마우스 캐릭터'에 대해서, 주식회사 코카콜라는 '코카콜라 비법'에 대해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 '  '로 표시한 것은 바로 '지식재산'이다. '돈이 되는 사람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재산을 법에서는 '인간의 창조적 활동 또는 경험 등에 의하여 창출되거나 발견된 지식ㆍ정보ㆍ기술,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 영업이나 물건의 표시, 생물의 품종이나 유전자원(遺傳資源), 그 밖에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지식재산기본법 제3조).


  처음부터 지식재산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식재산에 대해 소유개념이 생겨난 것은 인쇄 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구술 시대에는 텍스트를 저장할 수가 없었으므로 지식재산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생길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식을 저장, 복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텍스트가 비로소 교환가치를 갖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식재산도 물건처럼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래도 할 수 있고 상속도 할 수 있으며, 또 지식재산의 침해가 있으면 이를 못하게 막을 수도 있고 손해가 있으면 배상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재산을 어디까지, 어느 수준까지 보호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단팥빵 사건>


   단팥빵 사건을 보자. 원조씨는 2013년 3월 서울역에 원조 단팥빵집을 개업했다. 원조씨는 상품기획을 위해 수차례 일본을 방문하고, 수개의 디자인 업체에게 매장 디자인 개발을 의뢰하였다. 이렇듯 철저한 준비를 거쳐 원조씨는 천연발효종과 유기농 밀을 사용한 단팥빵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컨셉의 매장을 냈다. 제조과정을 고객에게 전면 공개하는 개방형 매장 배치를 하여 반죽과정부터 발효, 오븐에 굽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차별화된 인테리어를 하였다.

  그런데 원조 단팥빵집에 제빵기능사로 입사해 일하던 노원조씨는 입사 4개월만에 원조 단팥빵 가게를 그만 두고 2013년 12월에 똑같은 컨셉의 노원조 단팥빵집을 차렸다.

  두 개의 가게는 매장 이름만 달랐지, 아래 사진(판결문에 실린 사진)처럼, 서체, 검은 바탕에 하얀글씨, 천연발효종 또는 천연효모종을 작게 써놓은 것, 빨간색 낙관, 매장 전면 전체를 개방하고 매장의 전면 폭 전체에 걸쳐 매대를 배치한 인테리어 등 거의 모든 것이 흡사했다.

왼쪽이 원조, 오른쪽이 노원조씨 가게이다.



  재판 결과는 원조씨의 승이었다. 노원조씨에게 원조씨와 유사한 간판과 매장인테리어를 사용하지 말고,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서울고등법원 2016. 5. 12. 선고 2015나2044777 판결). 법원은 원조씨의 가게가 디자인보호법이나 상표법 등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의 개별 규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종합적인 이미지 등이 보호받아야 하는 성과물이라고 인정했다. 아래는 이 판결문 일부이다. 


  "상행위를 의미하는 '트레이드(Trade)'와 전체적인 외관, 외양을 의미하는 '드레스(Dress)'를 조합한 용어인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는, 어문상으로는 상행위와 관련된 상품 등의 외관, 외양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표시하는 문자나 기호 또는 도형들과는 달리, 상품이나 서비스의 포장, 색채의 조합 및 도안을 포함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포함되고, 영업소의 형태와 외관, 내부 디자인, 장식, 표지판, 근로자의 작업복 등 '영업의 종합적인 이미지' 또한 포함될 수 있다. (중략) 그 개별 요소들이 그 전체 혹은 결합되어 ① 본질적으로 식별력이 있거나(inherently distinctive), 2차적 의미(secondary meaning, 사용에 의한 식별력)를 획득하고, ② 비기능적(non-functional)이며, ③ 트레이드 드레스에 의하여 침해자의 상품 출처에 관하여 소비자에게 혼동의 가능성(likelihood of confusion)을 야기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모두 충족함으로써 상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이미지로서의 트레이드 드레스로 평가될 수 있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이 규정하고 있는 '해당 사업자의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된 성과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경쟁자가 이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이 정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7. 10. 선고 2014가합529490 판결 [부정경쟁행위금지등청구의소])




  지식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식재산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지식재산에 대한 창작 동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단팥빵 사건>에서 원조씨가 패소했다면 상당한 노력과 투자를 회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친 다른 가게가 생기는 것을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지식재산을 무조건 최대한 보호하면 해결되는가. 생각을 훔치는 것과 돈을 훔치는 것은 '훔친다'는 측면에서 똑같지 않은가.


  그러나 돈을 훔치는 것과 생각을 훔치는 것은 다르다. 창작과 개발은 진공의 상태에서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문화와 기술의 토양 위에서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자란다. 이것이 핵심이다. 오늘 나의 생각은 과거 타인의 생각에 빚져 있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조차도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식 재산의 보호범위를 너무 넓혀버리면 결국 그것은 거인의 어깨를 치워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인은 자신의 어깨 위로 올라서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혹은 어깨에 올려주는 대가로 굉장히 비싼 금액을 달라고 할 것이다. 즉 지식재산의 보호 범위를 너무 넓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지식재산을 창작하는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지식재산의 보호를 넓히는 것이 대부분 선진국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간다는 점도 문제이다. 에이즈 치료제 제약회사들이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생각해보자. 2001년 에이즈 치료제 제약회사들은 남아공 정부가 에이즈 치료제의 무단 복제를 묵인하자,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남아공에는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가 무려 50만명에 달했는데, 에이즈 환자 1명이 1년 동안 제공받아야 할 정상 치료 가격은 1만에서 1만5천달러였다. 남아공 정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제약회사들은 약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며, 이런 경우들을 묵인하면 나중에는 약을 개발할 돈도 부족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한시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약을 제공해주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에이즈 제약회사의 특허권 행사가 과연 옳은 것인지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이 소송 상대방인 남아공 정부의 소송비용까지 모두 지불하기로 하고 소를 취하했다. 일부 제약회사들은 정상가의 6%에 1년치 치료제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승리는 현실에서 드물고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지적소유권 제도는, 지식을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면, 흘러드는 물을 막아, 비옥한 경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땅을 기술의 황무지로 바꾸어 놓는 댐과 같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217면~218면

  따라서 생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지식재산을 만드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한편, 생각의 독점으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비용과 차별이 커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공공의 영역에 있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권리 안에 넣으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되지만,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또 확실한 보호도 해주어야 한다.  


  여섯살이 따라하는 아홉살의 말이 지금은 '법적'으로 권리가 되는 생각의 표현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누나 말을 따라하는 둘째에게는 '엄마의 권위'에 호소하여 그러지 말라고 훈계를 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우리 아이들의 생각이 법적인 권리가 미치는 지식재산이 되는 날이 오면 어떨까, 기분좋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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