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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와 동성애자가 명예로울 권리

똑같이 누리는 귀중한 명예

  애정하는 작가 중에 <일간 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이라는 수필집을 낸 이슬아라는 작가가 있다. 이 작가만큼이나 그녀가 '복희씨'라고 부르는 이슬아 작가의 엄마도 정말 좋다.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듣고 누드모델 일을 하러 갈때 입으라며 복희씨가 고급스러운 코트를 사주었다는 에피소드는 최애 에피소드이다. 나중에 딸이 누드모델을 하겠다고 하면, 나도 복희씨처럼 모피코트를 사주자고 다짐했다.  

  딸을 언제나 응원하는 복희씨는 나의 롤모델이다. 아이들을 그저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직업에 대한 선호도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여 선입견을 심어주는 일이 없도록 매번 조심한다. 이런 데 내가 다소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과 방식대로 살아온 것이 때때로 아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라도 나처럼 기존의 줄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찾아 콧노래 부르며 하루하루를 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런 바람 때문인지, 나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특수한 상황을 상상하여 내가 그 상황에서도 자녀를 수용하고 응원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가령 비혼모에 대한 기사를 보면, 아이가 비혼모가 되겠다고 하면 응원해줄 수 있는가, 라는 상상을 해본다. 

  솔직한 심정으로 응원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명제를 교과서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으로 체화하고 있지는 못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실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정말로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선호를 가졌든, 다양성과 개성, 그 자체의 눈부심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스스로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가족에 대해서 지지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그 마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니, 아이들이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었다. 여기에 모순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사회적인 잣대와 평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관과 선호에 따라 결정하기를 바라면서도, 반면에 아무리 작고 비합리적인 편견과 불공정일지라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러니 혹여라도 아이에게 사회의 편견에 노출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대로 내면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준다면, 설령 편견에 부딪히더라도, 그것은 아이들에게 잠시 부는 바람일 뿐, 아이들은 결국 편견을 딛고 스스로에게 솔직한,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머리로는 이러한 당위성을 납득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연약해서, 어젯밤 잠자리 대화에서만 해도, 여섯살 둘째 아들이 "엄마, 남자랑 남자랑 결혼할 수 있어?"라고 물었는데 바로 "아니, 남자랑 남자는 결혼할 수 없어."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명예훼손과 관련한 법원의 판례에서도, 당위와 현실 사이의 혼란스러운 괴리감을 느껴지곤 한다. 법원은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사실이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이라고 전제한다.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기분 나쁘게 한 말은 명예훼손이 되지 않고, 사회의 평가를 저하시키는 말만이 명예훼손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말이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인가'에 대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부른 단어는 바로 '대머리'였다. 


  1심은 '대머리'라는 말에 대하여, "피해자를 대머리라고 불렀다고 하더라도 이는 신체적 특징을 묘사한 말일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략) 대머리는 머리털이 많이 빠져 벗어진 머리,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하는 표준어이고 그 단어 자체에 어떤 경멸이나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어떠한 신체적 특징이든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 유행 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은 점, 본건과 같은 경우를 유죄로 인정한다면 처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가져올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를 명예훼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대머리'는 사람의 외모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외모에 대한 가치평가적인 요소도 내포하고 있는 점, 방송이나 문학작품 등에서 이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낸 사례가 없지 아니한 점, 특히 당사자의 경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점, 그 원인으로는 유전적 소인 등 여러 가지가 있고,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일종의 질병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통상의 일반인이 '대머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아니한 바, 이를 두고 사회적 가치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라고 보아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다시 3심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여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그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거나 그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하여, 유죄를 선고한 2심을 파기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판사가 대머리가 아니어서 대머리의 심정을 몰라서 그러나 본데, 대머리한테 대머리라고 하면 안 된다’라는 현실적인 반격을 하기도 했지만, '머리털이 많이 빠져서 벗어진 머리라는 뜻의 대머리'라는 단어에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는 힘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측면에서, 대법원 태도를 지지한다. 


   사회적 평가 저하를 인정한 판례들을 더 알아보자. 시계를 한참 앞으로 돌려, 1967년에 법원은 '장성한 자식들과 같이 사는 과부가 정교관계를 가진 사실을 유포하면 해당 과부의 명예가 훼손된다'라고 보았다. 또 2007년 대법원은 '동성애자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한 행위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하면서, "어떤 표현이 명예훼손적인지 여부는 그 표현에 대한 사회 통념에 따른 객관적 평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사회 통념상 그로 인하여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었다고 판단된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2012년에는 혼전임신 사실을 공개한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죄가 인정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의 통념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가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부의 성생활 공개'가 과부의 명예를 훼손시키는가. 과부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는 관점이 오히려 과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과부의 권리를 해한다. (과부의 성생활을 공개하는 행위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명예'훼손이 아니라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또 '혼전임신' 사실이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는 것은 이제는 고리타분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동성애'도 사회통념에 따른 평가와 전혀 무관한 정체성 중의 하나로만 인식되는 날이 올 것이다.   


  즉, 대머리도, 동성애도, 개인의 특징을 표현하는 단어일 뿐이어서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요소로 판단되는 것 자체가 '당위적인 측면에서는' 부당하다. 그러나 법원은 명예가 훼손되는 '현실적인' 피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를 위하여 처벌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 한편으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명예권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도 있다. 이들은 성숙한 인간에게 타인의 말은 중요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나약한 인간들만이 타인의 평판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나도 타인의 평판에 영향받지 않는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동성애자들과 대머리들, 모든 소수자들은 갈등없이 평등하게 똑같이 귀중한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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