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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장수풍뎅이의 권리

내 몸에 새겨진 물고기

물고기


십수년 전 친정 부모님은 커다란 수조를 구입했다. 수조는 'ㄱ' 모양으로, 수조 한쪽은 흙을 채워 나무를 심고, 반대쪽은 물을 채워 물고기를 키우도록 되어 있었다. 연못이 있는 작은 정원이 거실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새 수조가 마법을 부렸을까. 동물 키우기를 언제나 반대하던 엄마는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의 열대어 여러 마리를 직접 골랐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는지 물고기들은 당최 화목하지가 않았다. 유독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들이 먹이 먹는 것을 방해했고, 결국 방해한 물고기만 살아남고 나머지 물고기는 비실대다, 모두 죽었다. 심지어 그렇게 남은 한마리는 먹이를 줄 때만 쏜살같이 나타났다가 눈 깜짝할 새 먹이를 먹어치우고는 하루 종일 바위 뒤에 숨어 지냈다. 물고기가 아름답게 헤엄치는 모습을 기대했던 엄마는 낙심했다.


  그렇게 삼사 년 정도가 흐르자, 수조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애초 거실 사이즈에 비해 수조가 너무 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데다 하루종일 수조에는 물고기 그림자라고는 보이지도 않고 물만 그득그득 차 있으니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마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 물고기는 집 앞 개천에 방생하기로 결정됐다.

 

  물고기를 먹이로 유인한 뒤, 플라스틱 바가지로 낚아채, 일단 화장실의 대야에 이동시켰다. 크고 안락했던 수조에서 좁고 얕은 화장실 대야로 옮겨진 물고기는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한 듯, 자꾸 튀어 올랐다. 결국에 물고기는 차갑고 매끈한 화장실 바닥 타일 위로 툭 떨어졌다. 그러자 물고기의 아가미는 더욱 괴롭게 할딱 거렸다. 우리는 물고기를 얼른 손으로 들어 대야에 넣고 개천을 나갔다. 개천의 돌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보냈다. 물고기는 물살을 따라가다, 이내 눈에서 보이지 않았다.  


  물고기는 열대어라 수온이 맞지 않았을 테니, 얼마 못 살았을 것이다. 결국 키우던 물고기를 죽인 것이었다. 이날은 내게 죄책감과 후회를 남겼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날의 행위가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나쁜 행위인 것도 지금은 알고 있으며 그 부분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장풍이


시간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올해 초 여름에 큰 아이가 학교에서 장수풍뎅이를 가지고 왔다. 우리집의 장수풍뎅이는 '장풍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장풍이는 낮에는 얌전하다가, 밤에는 플라스틱 사육장 벽면에 몸을 박거나 벽면을 다리로 긁는 소리를 냈다. 밤이 되면 이러한 장풍이를 자주 사육장에서 꺼내 집을 활보하게 두었다. 그러면 장풍이는 거실 창틀을 등반하기도 하고, 특히 거실의 회색 천의자를 종횡무진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우리집 천장을 비행 하기도 했다. 장풍이와 나는 야행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둘은 다른 식구들이 잠든 올 여름 밤의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혹시 아이들이 장풍이를 못 보고 밟아버리면 안 되므로, 장풍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자러 들어갈 때는 장풍이를 다시 사육장에 넣었다. 그런데 사육장에서 나올 땐 언제나 그 즉시 오케이인 녀석이 다시 사육장에 들여보내려 하면, 자신의 다리를 바닥에 딱 붙여버려 날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억지로 떼내면 장수풍뎅이 다리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해서,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나의 애꿎은 밤잠만 달아났다.    

  장풍이가 플라스틱 사육장에서 키워지는 것이 불행하지는 않을지 종종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을 하다보면 장수풍뎅이에게도 과연 감정이란 것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몇 번이나 숲으로 보내줄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처음에는 장마와 한여름 고온에 장풍이가 죽을까, 나중에는 여름 내내 젤리(장풍이 사료)만 먹고 산 장풍이가 야생에서 먹이를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한편 시간이 갈수록 장풍이는 점점 먹는 양이 줄고 움직임도 둔해졌다. 거실에 풀어줘도 잘 움직이지 않았고 한자리에만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날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장풍이가 날고 싶은지 날개를 퍼덕 거리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간만에 본 장풍이의 날개는 말라 있어서, 물방울을 살짝 팅겨주며 건조함이 가시기를 기도했다. 오랜만에 기운을 차린 장풍이를 보니 기쁘면서도, 장수풍뎅이는 죽기 전에 난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던 터라 불길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삼일 후 결국 장풍이는 죽었다. 죽기 전 날 젤리를 전혀 먹지 않아 젤리 받침대에 몸을 올려줘도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받침대에서 계속 떨어져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


  장풍이가 우리집에 있는 동안 나는 십수년 전 개천에 버린 물고기를 자주 떠올렸다. 장풍이를 향한 나의 애정과 염려, 걱정은 물고기에 대한 부채감과 이어져 있었다. 십수년 동안 물고기를 계속 생각하며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거의 잊고 지냈다. 그렇지만 물고기가 내 몸 어딘가에 자신을 새겨놓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야에서 튀어오르던 물고기의 움직임, 화장실 바닥 타일에서 퍼덕거리던 물고기의 몸체, 숨을 할딱일 때마다 움직이는 물고기의 가쁜 아가미가 이렇게 선명하고 또렷하게 기억날 리 없었다.  

  물고기에 대한 죄책감이 나로 하여금 장풍이를 귀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장풍이의 행복과 마음, 생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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