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권리의 발견
법은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변호사 업무를 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를 검토, 분석해야 하는 리걸마인드이다. 그러나 새로운 권리가 발견되거나 확장되는 과정은 때때로 리걸마인드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대단히 감정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 빚져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권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아예 새로운 생각을 시도하는 것이고, 그것은 기존의 통념에서 문제점과 모순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새로운 권리'는 심해에 묻혀있던 해적선의 보물과는 다르다. 발견하는 순간 이것이 보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 기존 권리 제도의 불평등을 발견했다고 하자. 하지만 이것이 '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느 지적인 개인의 선구적인 발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를 테면 지금은 흑인을 거래하는 것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흑인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미국대법원이 "노예가 된 흑인은 보편적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윤이 남는 경우라면 언제라도 사고 팔 수 있는 존재"*라고 판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L.레너드 케스터, 정시몬,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31, 현암사, 218면.
그렇다면 인정받지 못하던 권리가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기까지 어떤 것이 필요할까. 나는 이 지점에서 '개인들의 감정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접적인 경험이어도 상관없지만, 개인에게 깊고 선명한 울림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법'은 자연법칙이나 수학, 과학과는 다르다. 법은 원리가 아니라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권리 체계에 분노하고 연민을 느끼고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반면에 새로운 권리를 환호하고 지지하고 반기는 개인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 발견한 이 권리가 우리의 '보물'이라는 사실에 다함께 합의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의 권리
물고기와 장풍이는 내게 동물의 권리를 제대로 바라보게 만든 사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사실 인간중심적인 사람이라, 그 동안 동물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했다. 그러므로 이십대 때 '도롱뇽 소송'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도 솔직하게 말도 안 되는 소송이라고 생각했다. 도롱뇽 소송이란, 정부가 멸종 위기 종으로 보호되는 꼬리치레도롱툥의 대규모 서식지인 천성산을 관통하는 원효터널을 뚫기로 결정하자,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위 공사를 막아달라는 소송이었다. 법원은 '도롱뇽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도롱뇽목 도룡과에 속하는 양서류로서,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그 자체로서는 소송을 수행할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4마1148, 2004마1149).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양서류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나, 라고 생각하고, 이 소송에 대해서는 가볍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물고기와 장풍이의 생존과 마음, 행복에 대해 눈을 맞추고, 동물의 권리라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물샐틈 없을 것 같던 도롱뇽 소송에 대한 나의 냉대와 무관심에 한 줄기 빛이 비췄다. 자연스레, 동물의 권리를 인정한 외국의 판결들과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정해놓은 외국 사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개 판레만 소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