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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인의 몸에 대한 권리

며느리의 사후 안식과 효율적인 자녀 동선에 대한 고민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죽어서까지 시댁식구가 잔뜩 묻힌 시댁 선산에 묻히고 싶지 않은데 어떡하죠?'라는 글이 올라왔다. '시댁식구는 좀...', '나도 우리 엄마, 아빠 옆에 묻히고 싶다' 등 동조 댓글이 여럿 달렸다. 그런데 한 사람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래도 남편하고 같은 데 묻혀 있어야, 나중에 자식들 동선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였다. '동선'이라... 시간이 금인 세상에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사후 안식'과 '자식의 동선 문제'라는 양보불가능한 두 가지 논제로 인해서 카페 회원들 모두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데, 장례과정에서 결정이 필요한 사항들이 많다. 이 중에 하나가 '죽은 자의 몸'을 어떻게 하고, 어디에 모실지에 대한 것이다. 주검이나 유골을 불에 태울지, 땅에 묻을지, 유골을 분골하여 바다나 강에 뿌릴지, 또 장지를 봉안당으로 할지, 선산으로 할지, 자연장으로 할지를 정해야 한다. 고인이 죽기 전에 직접 뜻을 남기는 경우도 있고, 고인이 죽고 난 후에 자식들끼리 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은 몸'을 놓고, 법정 분쟁을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본인의 묘지 자리를 정하고 그 곳에 묻혔다. 그런데 제사주재자인 장남이 아버지의 유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 이런 사건의 쟁점은, 아버지의 묘지 자리를 아버지의 생전 의사에 따를 것이냐, 아니면 제사주재자인 장남의 의견대로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영혼이 떠나고 남은 죽은 자의 몸은 더 이상 죽은 자의 것이 아니니, 장남이 결정하면 된다고 봤다. 


 "사람의 유체, 유골은 매장, 관리, 제사, 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의 유체, 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3 소정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고, 피상속인 자신의 유체, 유골 역시 위 제사용 재산에 준하여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 (중략) 망인의 영혼이 떠나고 남은 유체, 유골에 대한 매장 관리, 제사, 공양 등은 그 제사주재자를 비롯한 유족들의 망인에 대한 경애, 추모 등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망인의 유체, 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관리 및 처분은 종국적으로 제사주재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중략) 피상속인(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무조건 이에 구속되어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다수의견이다. 고인의 몸은 망인의 영혼이 떠나고 매장과 제사의 대상이 되는 '물건'일 뿐이므로, 제사를 지내는 제사주재가 유체, 유골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 당연하며, 따라서 고인이 생전에 가진 뜻보다 제사를 지내는 자의 의사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반대의견은 죽은 사람의 의사가 1차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 소수의견이 더 마음에 든다. 법리가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어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변호사가 할 소리로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이래가지고 변호사가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쪽이 더 따뜻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느껴지며, 사망이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린다고 보지 않고, 인간을 '영혼이 깃든 존재'로 본듯해서, 마음에 든다. 


"사람의 신체는 그의 본질적 속성이다. 그리고 신체는 가장 뚜렷한 '내 것'으로서, 내가 소유하는 어떠한 물건보다도 더욱 현저하게 나에게 속하며 나의 의사에 의하여 지배된다. (중략)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는 인격권적인 성질의 것으로서 그것이 법정의 유언사항인지 아닌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장례, 장기기증, 분묘개설 기타 자신의 유체에 대한 사후처리에 관한 한, 이른바 '사후적' 인격보호의 한 내용으로서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하여야 한다. (중략)

  인간의 존엄은 그의 사망에 의하여 완전한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인격 보호의 필요는 사망으로 인하여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 (중략)  사람이 자신이 사망한 후에 일어나는 장사 기타 유체의 처리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고 자신의 의사를 종국적으로 정하여 그대로 실행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법은 망인이 생전에 가지던 재산에 대한 유언, 사인증여 등 행위에 법적 효력을 준다. 그렇다면 망인이 소유하는 어떠한 물건보다도 더욱 현저하게 그에게 속하여 그 의사에 의하여 지배되던 그의 몸에 대하여는 그 성질상 더욱 그러하여야 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망인의 안식'이라는 관념을 알고 있다. 누구도 죽은 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죽은 후에 사랑하는 유족들이 유체를 두고 서로 편을 갈라 싸운다는 것은 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하여서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이 죽은 후에 남기는 유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의사 결정에 법적 효력을 줄 필요가 있고, 그 의사의 실현을 도덕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사태를 적절히 막을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한도에서 누구에나 닥쳐올 죽음 그 후에 대한 현재의 안식을 확보하는 것이 된다."(대법관 안대희, 대법관 양창수의 반대의견)


  어쨌거나 대법원 다수의견에 따르면, 내가 죽은 후 나의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고 남겨진 자식의 것이니, 죽어서 시댁 선산에 있을지 말지를 고민일랑 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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