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강이 보이는 복층집에 살고 싶어요. 반짝이는 윤슬을 보면서, 1층에서 작업을 하고, 2층에서 석양과 노을을 보면서 잠들고 일어나면 너무 좋을꺼 같아” 라고 내가 말하자, 엄마는 “엄마도 네 나이때는 이층집에 살고 싶었어” 하며 슬픈 눈으로 웃으셨다.
복층집과 이층집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엄마의 눈빛은 슬픈 것일까?
엄마는 스스로 “우당탕탕”이라고 표현할 만큼 밝고, 명랑하고, 유쾌한 분이다.
감정이 풍부한 엄마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 공감하여 울기도 하고, 신나게 좋아하시기도 하고, 깔깔 웃으며 장난치기도 하신다. 대부분 엄마는 재미있고, 소란스럽다.
그런 엄마가 장마철 뉴스를 볼 때면 고요하고, 잔잔하고, 슬퍼지신다.
토사가 넘쳐 집이 무너진 장면, 살림살이들이 둥둥 떠다니는 장면, 지하철역으로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가는 물줄기를 볼 때면 “아이고, 아휴, 어쩌나” 하면서 한숨을 쉬신다.
어렸을 때 엄마는 이모랑 마주 보고 탈 수 있는 철제 그네가 있던 집에 살았었다.
마당에 있는 풀을 뜯고, 화단 경계에 놓인 붉은 벽돌 조각을 빻아서 요리를 하는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고,
집을 지키는 개가 낳은 강아지들이 여기저기 똥을 싸고 다녀서, 마당이 순식간에 위험해지기도 했다.
엄마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가세가 기울어, 연탄을 떼는 지하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오랫동안 창문이 반만 있는 반 지하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는 맨홀 뚜껑이 솟아오르고, 온 동네 자동차들이 빗물이 만든 물길을 따라 사거리로 모여 들만큼 큰 비가 내렸고, 그 비에 반 지하 방 2개는 무릎까지 흙탕물이 차오르는 물난리가 났었다.
이제 엄마는 반 지하방이 아닌 아파트에 살지만, 여름마다 접하는 장마, 폭우 그리고 수해 뉴스는 속수무책으로 차오르던 차갑고 빠른 물길의 기억을 되살린다.
나는 복층집에 살고 싶다. 납작한 내방을 떠나 나의 삶을 스스로 유지할만한 어른이 되면, 목을 30도쯤 뒤로 꺾어야 천장이 보이는 탁 트인 공간, 커다란 유리창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비추는 그런 집에 살고 싶다. 나에게 복층은 자유와 성취의 상징이다.
하지만 엄마의 이층 집은 큰 비에도 쓸려 나가지 않는 안전한 삶의 자리이다.
엄마가 나에게 주려는 삶은 이층 집과 복층집의 차이와도 같다.
안전한 삶을 마련해 주기 위한 엄마의 노력한 덕분에 나는 자유와 성취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자유와 성취를 누리게 된다면, 나는 엄마에게 더 넓고 더 높은 복층집을 선물할 것이다.
큰 비가 와도 물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는 크고 단단한 복층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