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어렸을 때의 경험은 기억하지 못해도 무의식에 박제되어 불쑥 떠오른다.
그것이 부정적이거나, 권위적이거나, 압도될 만큼 커다란 무게 였다면, 성인 혹은 노인이 되어도 두려움은 끈질기게 따라 다닌다.
두려움을 마주 보게 한다면 어떨까.
실체가 없는 두려움의 모양, 색상을 보여준다면, 깊이 박힌 날선 두려움이 무디어지지 않을까?
엄마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어둠 속에 혼자 놓이면 기억의 바닥에 꾹꾹 눌러 두었던, 두려움이 올라왔다.
방범 창틀에 발이 걸려 몸을 버둥거리며, 기괴하게 울던 고양이, 빌딩 사이로 소리 없이 움직이며 긴 그림자를 남기는 나쁜 사람들, 모두가 잠든 밤 슬며시 다가와서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 등 온갖 무서운 이야기는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한다.
어둠은 시각적 제한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만들었다.
겁이 많았던 엄마는 어이없게도 샤워 중에 머리를 감기 위해 눈을 감을 때 누군가 등뒤에서 목을 조르거나, 혹은 천장에 거꾸로 붙은 머리카락이 긴 귀신 때문에, 아무리 씻어도 거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눈을 감아 만든 어둠조차도 두려움이 대상이 되자, 거품이 들어가도 눈을 뜨고 샴푸 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두려움에 질감이 있다면 칼끝처럼 뾰족하고, 따갑고, 아플 것이 분명하다.
아이도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의 두려움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런 현상을 Closed-Eye Hallucination이라 부른다.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은 실은, 망막이라는 필름에 맺힌 이미지가 전기 신호로 변해 뇌에서 해석하여 보이는 것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망막은 빛이라는 자극이 차단되었더라도, biophoton (생물광량자)이라는 빛의 신호를 자체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망막이 만드는 신비한 네온 컬러의 향연을 따라가다 잠이 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한다. 아이는 엄마가 느끼는 두려움의 질감, 두려움이 생기는 환경의 색상 그리고 물성에 대해 집중했다.
괴물처럼 무서운 얼굴을 가진 뾰족한 두려움도, 생물광량자처럼 이름도 몰랐던 실체적인 환각도 결국은 분절되고,무너지고 두려움의 뾰족함이 녹아내려 강물처럼 흐르지 않을까.
두려움의 물성은 핫케이크 위에 뿌린 차가운 메이플 시럽처럼 흘러내리고, 녹아들고, 그래서 더 이상 어둡고 따갑고, 뾰족한 것이 아니라 네온 빛의 흥미로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엄마에게 두려움의 실체는 그려서 보여준다.
어두운 밤에도 더 이상 두렵지 않도록, 더 이상 놀라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