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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메롱 by 김분태씨

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by kimleekim

완고하고 경직된 표정, 가늘고 긴 다리를 쭉 뻗어 찌르듯 걷는 걸음걸이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도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김분태님

견고한 무장을 해제시키는 유일한 상황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


“아이 아빠 지나가시는 거 봤는데, 기분 안 좋은 것 같아서 인사는 못 드렸어요”

아빠를 처음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이 있구나” 혹은 “화가 나셨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도형에 비유하면 내각 120도의 정확한 육각형 같은 아빠는 원칙에 충실한 성실한 분이다.

단순히 호불호가 아니라 극 호, 불호의 취향이 확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지 않는 만큼, 상대가 무례한 것을 참지 못하신다.


불필요할 만큼 거짓이 없는 아빠의 약점은 표정이다.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아빠의 단호한 표정은 “글쎄요”, “괜찮아요”와 같은 뉴트럴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싫어”, “절대 안 해”와 같이 지극히 확실한 감정을 전달한다.

물론 아빠는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항변하지만, 웬만큼 눈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강렬한 부정 혹은 부동의의 의견을 표정과 눈빛으로 읽을 수 있다.


아빠의 이마에는 Y자로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집중을 위해 근육에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집중의 흔적 또한 “화가 나셨다”로 잘못 해석 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의 학부모 친구들은 아빠의 모습을 오해하고 “아이 아빠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혹은 “화가 많이 나셨던데” 하는 일이 많았고, 엄마가 그저 표정이 경직된 것이라 답변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한다.

심지어 어떤 날은, 엄마의 후배가 “언니, 지나다 보니 형부가 환하게 웃고 계세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한다. 엄마는 익숙한 듯 “전방에 우리 딸 있을 거야” 하고 답변 해주셨단다.

초등학교 1학년 이후,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아빠는 “김 분태 씨”로 불린다.

뒷모습 까지도 화가 난 듯하다는 뜻으로 “분노 뒤태”를 줄여서 붙인 아빠의 별명이다.


김 분태 씨가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건,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귀한 외동딸 나와 함께 있을 때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제일 먼저 만났고, 자주 출장 다니시던 엄마 대신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시는 분은 아빠였다.

아빠가 얼마나 나를 귀하게 사랑했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기 때부터 아빠 팔을 배고 낮잠을 잤고, 성인이 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아빠에게 가면 나를 안아주시고, 나는 아빠의 볼에 뽀뽀를 한다. 우리는 수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팔짱 끼고 데이트를 한다.


세상 모두에게 무뚝뚝한 아빠가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세상 모든 일을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개구쟁이 아이처럼 놀리고, 장난을 거신다.

그래서 김 분태 씨에게는 오직 엄마와 나만 아는 표정이 있다.

“메롱” 아빠의 메롱 표정은 세상에서 나와 엄마만 볼 수 있다.


경계심 없이, 책임감과 성실함의 무게 없이 어린 애처럼 장난 치는 가벼운 표정.

아빠의 메롱 표정을 자주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놀림거리를 찾기도 한다.

아빠의 장난에 뾰로통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빠의 메롱 표정이 얼마나 귀한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공유 되는 귀한 표정.


오래도록 자주 보고 싶은 행복한 표정. 메롱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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