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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오로라

그림 : Dottie Kim 글 : Mama Lee

by kimleekim

검은 밤하늘의 커튼이 열리면, 파란 빛줄기가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춤을 춘다.
파란빛이 노랑, 초록, 하양, 보라색으로 변하며,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공연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나 처럼 섬세하고 장엄하게 하늘을 누빈다.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삶의 많은 일들을 꿈꾸고, 선택하고, 포기하고, 아쉬워하며 산다.

보이는 것이 본질에 앞서는 것은 아니지만, 인스타그램에 소개할 만한 맛집에 가서 반짝이는 음식 사진을 찍고, 엄청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으로 설레는 표정의 사진을 찍는 것 정도는 시도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잎사귀의 크기와 색을 바꾸는 나무를 보며 자연의 변화를 즐길 수 있고,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유튜브로 엿보며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


국민학교 5학년 추운 겨울이었다. 2층 단독 주택에 작고 예쁜 마당이 있고, 철로 만든 그네가 있는 집이었다.

밖에서 보면 동화책같이 따뜻한 집이었지만, 그해 겨울은 추워도 너무나 추웠다.

집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양말을 꼭 신어야 했고, 잠자는 이불속에서도 양말을 벗을 수 없었다.

연탄보일러가 아닌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던, 그야말로 달러를 태우는 집이었다. 아마 그 집에 이사할 때에는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보일러였겠지만, 사는 동안 형편은 어려워졌고, 겨울이 되면, 실내에서도 입김이 날 만큼 냉혹한 밤도 며칠씩 이어졌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년생인 이모와 엄마는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으면 포장도 뜯지 않고 두었다가, 서로의 친구들 선물로 바꿔서 전달하곤 했다. 속속들이 알 수 없었지만, 집안 사정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고, 엄마는 뭔가를 굳이 꼭 갖고 싶다는 의지가 없이 어른이 되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쇼핑할 때, 메뉴를 선택할 때, 1년에 한 번 휴가철 여행지를 선택할 때 엄마는 어떠한 선택에도 본인의 의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아빠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딸 좋은 거 사” 가끔은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거 안 할 건데 왜 물어봐요”

하시기도 하지만, 그건 강력한 반대 의견이라기보다 귀찮음의 표현이다.


한 번은 엄마는 왜 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엄마는 왜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어봤다.

“취향은 선택을 거듭해야 생기는 것인데, 엄마는 취향을 가질 만한 선택이 많지 않았어. 그게 싫거나 슬픈 건 아닌데, 너는 선택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물론 선택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야. 선택은 이루려면 환경이 되어야 하고, 책임과 능력이 있어야 해. 하지만 그래도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어. 그래야 자신의 취향이 생기고, 인생을 향유할 수 있으니까.”


강하게 주장하는 법이 없는 엄마는 TV에서 오로라가 펼쳐질 때마다, 홀린 듯이 바라보며, “죽기 전에 오로라는 꼭 한번 보고 싶어”라고 읊조린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말이 되어 엄마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매우 객관적인 아빠는 그럴 때마다 “오로라를 제대로 보는 건 쉽지 않아. 옐로나이프, 아이슬란드, 페어뱅크스처럼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장소는 한계가 있고, 며칠씩 노숙 수준의 캠핑을 하면서 기다려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어. 화장실이 깔끔하지도 않을 거고, 당신은 견딜 수 없을걸. 심지어 TV나 사진으로 보는 건 근사하지만,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다고.”

대부분 아빠에게 동의하는 엄마지만 오로라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린다.

“그래도 오로라 꼭 보고 싶어.”


엄마에게 오로라는 취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게 사로잡혀 꼭 한번 보고 향유하고 싶은 여행의 취향.


당장 오로라를 보러 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 꼭 엄마랑 같이 오로라의 선택을 받으러 여행을 떠날 거다.

며칠씩 캠핑을 하면서 밤하늘을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면서 오로라를 기다릴 거다.


밤의 하늘을 무대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오로라의 춤을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며, 초대장을 먼저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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