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과 함께 세계로, 기차로 대륙을 누비다.
베네치아에서 밀라노까지는 기차로 2시간 35분이 걸린다. 어제와 오늘은 완전히 강행군이다. 기차에서 쪽잠 자고 어제는 베를린을 돌아다녔고 오늘은 베네치아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기차를 탄 것이다.
기차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지도상으로 보면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한다. 버스를 타도 그 시간이고 택시도 타려면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흥정을 해야 되어 걷기로 한 것이다. 배낭을 메고 걸어갈 때는 내가 항상 5~6 미터는 앞서서 간다. 그래야 길을 찾아 스마트폰 어플의 지도를 따라가는데 내가 앞서 길을 안내하다 길이 아니면 다시 돌아 나갈 때 뒤에 따라오는 아내가 고생을 않는다. 지도의 네비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잘 맞지 않기 때문에 가다 보면 엉뚱한 길이 나와 다시 되돌아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비가 오고 안개도 끼어 날씨는 참 우중충하였다. 나는 앞서서 가고 뒤에 따라오는 집사람에게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낡은 자가용을 탄 아랍계 사람이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쫓아가서 무슨 일이냐 했더니 가던 차가 우리를 보고 차를 세우더니 자기들이 경찰이라며 중국계 사람들의 밀수 사건과 관련하여 조사할 것이 있다며 패스포트를 요구한다.
머리가 복잡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들은 경찰이 아니다. 몸싸움이라도 하다 배낭을 뺏어 차에 싣고 달아나면 크게 돈 되는 것은 없어도 여행에 차질이 생긴다. 진짜 경찰을 불러야 될 텐데 어떻게 하지? 그런데 마침 우리 곁으로 중년의 아주머니가 지나간다.
집사람이 다짜고짜 그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끌며 헬프 미를 외친다. 아주머니가 왜 그러느냐며 물어보고 우리와 그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사태를 파악하더니 무슨 일이냐고 아랍계 사람에게 묻는다. 우리도 저 사람들이 경찰이라며 패스포트를 요구한다고 했더니 아주머니의 언성이 높아지며 큰소리로 따지듯 이야기하니 그 사람들이 두말도 없이 차를 몰고 달아난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집사람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숙소는 바로 옆에 있었다. 사기꾼의 농간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숙소에 들어가 주인아줌마에게 이야기하니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닌 양 대답이 심드렁하다. 여기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인가? 어쨌든 5개월의 긴 배낭여행 기간 중에서 기억 남는 큰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숙소는 한인 민박집이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도미토리를 신청했는데 여자와 남자 따로 자는 방이다.
사람도 많지 않아 여자가 쓰는 방에 여자는 아내밖에 없어 내가 그냥 여자 방에서 함께 잤다. 방의 손님은 남학생이 두 명이 있었고 한 가족 4명이 있었는데 내일 모두 떠난다 했다.
이틀 밤을 계속 제대로 자지 못해 피곤한 몸을 하룻밤의 잠으로 풀 수는 없었으나 또다시 밀라노 대성당과 광장 그리고 스포르 체스 코 성, 비토리오 에마누엘 제2세 갤러리아와 패션의 거리를 돌아다녀 본다. 대성당 인근과 성에는 관광객들이 많았으나 그 외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 어제는 비도 오고 날씨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좀 그렇기도 하다.
밀라노에서는 경찰을 사칭하는 사기꾼에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위기를 모면하였고 계속되는 피곤한 여행으로 둘이 심하게 다투기도 하였다. 힘들고 지치니 늘어나는 것이 짜증이다. 힘들면 서로 힘을 복 돋워 주고 위로하고 그래야 되는데 서로 힘드니 같이 짜증을 내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글 중에 결혼을 앞둔 커플이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면 둘이 배낭여행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보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 생각났는데 우리가 정말 여행을 그만두고 한국 가는 비행기표 검색하여 가자고 하였다가 화해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하였다.
다툼이 있고 조금 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림 상으로는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을 시켰는데 야채와 함께 생 돼지고기와 빵이 나온다. 아마 돼지고기는 숙성시킨 것인데 도저히 생것은 씹다가 삼키지를 못하겠다.
도저히 못 먹어 웨이터를 불러 고기를 구워주거나 삶아 줄 수 있느냐 했더니 그럴 수 없다 한다. 그러면 전자레인지에 한번 돌려 달라 했더니 그것은 된다 하여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 이탈리아 음식 한번 먹으려다 체면 구겼다. 그냥 패스트푸드를 먹었어야 되었는데....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파리를 여행할 때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꼭 사람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다. 로마에서는 싸인지를 들고 다니며 사인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여기는 실로 만든 팔찌를 들고 다니며 선물로 주겠다고 따라다닌다.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공연히 긴장하게 된다. 되도록이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외면을 하고 말을 걸어오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을 하지만 정말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손사래를 치고 뛰다시피 도망가 보지만 또 다른 사람이 따라온다. 정말 서 유럽은 제3 국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치안도 그렇고 사기꾼도 그렇다. 어제의 아랍계 사람들도 우리들에게 사기를 치려 했던 것을 생각하며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다 잡는다.
아침에 일어나 많이도 돌아다녔다. 이제 유레일패스의 기간은 일주일 남았다. 갈 곳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들리는 소문에 프랑스 철도의 파업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스페인을 가려면 어떻게 가든 프랑스는 지나야 되는데 걱정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많은 파업과 시위 현장을 목격하였는데 여기서는 파업이나 시위가 과격하지 않고 경찰이 시위대를 보호한다.
노르웨이에서의 시위 현장은 축제의 현장이었다. 보도진들이 시위대를 계속 따라다니며 취재를 하고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그리고 같이 웃고 노래하며 플래카드를 흔들며 시위를 하고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도 박수로 답하며 즐겁게 하는 것 같았다.
함부르크에 있을 때는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 파업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을 텐데도 그렇게 크게 불평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여기서도 엑스포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데 경찰들은 시위대를 보호하는 입장인 것 같다. 시위대 외곽에서 순찰을 하며 그렇게.
어쨌거나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이제는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나포리로 간다. 밀라노에서 나포리까지는 기차로 약 4시간 반이 소요된다. 배낭은 한인 민박집에 맡겼고 오늘 늦은 밤 나포리에서 자고 아침 나포리를 구경하고 로마와 퓌 렌체를 거쳐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서 스페인으로 가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좀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유튜브에도 올려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