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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Sep 05. 2019

프랑스혁명 기념일과 마크롱 대통령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K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잘 준비를 했고, 그대고 곯아떨어졌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시 깨기도 했지만, 비교적 꿀잠을 잔 편이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특별히 부지런한 편도 아닌데, K와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냉장고로 향했다.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한 손에 머그컵을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커튼을 젖히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 창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창문으로 상쾌한 공기가 날아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침의 공기였다.


오늘 우리의 일정은 비교적 널널한 편이었다. 둘째 날인 7월 14일은 프랑스혁명 기념일(Bastille day)이었다. 우리는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고 느지막이 나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리는 프랑스혁명 기념일 행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여유로운 아침, 밖으로 나가 조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고이 접어두었다. 여행지에서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어차피 많이 걸을 테니까. 굳이 아침부터 조깅으로 힘 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랑이 기운과 납작 복숭아, 그리고 차 한 잔

아침 식사 메뉴는 시리얼과 납작 복숭아. 


어제 K와 나는 숙소에 들어오기 전 franprix에 들러 여러 가지 맛 시리얼이 작은 상자에 들어 있는 켈로그 버라이어티팩을 샀다. 마침 8개들이 구성이어서 파리에 머무는 나흘 동안 아침에 하나씩 먹으면 됐다. 


머그잔에 시리얼을 탈탈탈 털어 넣고 우유를 부었다. 그다음 나의 여행 키트에서 플라스틱 수저 2개를 꺼냈다. (플라스틱 수저와 포크, 깨지지 않는 일회용 접시, 맥가이버 칼, 그리고 플라스틱 와인잔이 담긴 내 여행 키트는 그동안의 여행 노하우가 집약된 물건들이다. 여행지에 뭘 저렇게 바리바리 싸서 가냐고 할지 모르지만, 다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물건이다. 실로 내 여행 키트는 이번 파리 여행에서도 너무나 유용하게 쓰였다.) 눅눅한 맛을 싫어해 나는 시리얼이 불기 전에 얼른 와그작와그작 씹어 넘겼다. 그리고 맥가이버 칼을 꺼내 들어 누가 엉덩이로 깔아뭉갠 듯한 납작 복숭아 하나를 깎았다. 

자고로 시리얼을 우유 조금에 시리얼 많이가 진리다

식료품점에서 납작 복숭아를 발견한 K는 돌고래 비명소리를 내며, 납작 복숭아 한 팩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누가 인스타그램에 납작 복숭아 인증샷이 올렸는데 생김새가 너무 귀여워 꼭 먹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인증샷에 따르면, 당도도 엄청 높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맛본 납작 복숭아는 적당히 달고 적당히 밍밍한 일반 복숭아 맛이었다. 이래서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속으면 안 되는 거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는 차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아침에 차를 마시는 건 영국 어학연수 시절에 생긴 습관이다. 홈스테이할 때, 호스트는 늘 자스민차를 구비해두었다. 아침을 따로 차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아침 식사 대신 시리얼과 차를 마실 때가 많았다. 홈스테이 가정과 싸우고 사설 기숙사로 옮긴 다음에도 차는 꾸준히 마셨다. 나와 3개월 동안 함께 산 플랫 메이트 캐시가 늘 요크셔 티를 떨어지지 않게 사놓았기 때문에.


여행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게으름’이라는 호사를 마음껏 누린 뒤 K와 나는 프랑스혁명 기념일 행사 시간에 맞춰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숙소를 나와 수많은 인파가 향하는 곳으로 따라 걸으니 어느덧 행사장에 도착했다. 5년 전에도, 지금도 역시 길을 잘 모를 때는 대세를 따라야 하는 법이다. 

하루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개선문 앞 풍경

어제까지만 해도 차로 가득했던 샹젤리제 거리에 탱크와 군용 트럭이 들어섰다. 그리고 거리를 따라 긴 안전 펜스도 세워졌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기념행사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K와 나는 펜스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짙은 남색 옷을 입은 경찰이 우리를 막아섰다. 가방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2015년과 2016년 프랑스에서는 연이어 테러 사건이 발행했다. 두 사건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벌인 일이었다. 그 이후로 프랑스는 주요 행사에서 보안과 경비를 강화했다.


에코백에 담긴 물건들을 다 보여준 뒤에야 우리는 안전 펜스 가까이 이동할 수 있었다. 30여 분쯤 기다리니 비로소 행사가 시작됐다. 하늘에서는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갔고, 제트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프랑스의 국기를 나타내는 빨강, 파랑, 흰색의 염료가 뿌려졌다. 군인들의 행진도 이어졌다. 탱크와 군용 트럭을 탄 군인들이 군악대의 음악 소리에 맞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파리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상젤리제 거리에 도열한 군인들

행사가 무르익을 즈음, 불어로 된 안내방송이 나왔다.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불어라고는 봉주르, 메르시, 울랄라 밖에 모르는 나였다. 하지만, 안내 방송을 듣고 곧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될 거란 걸 직감했다. 


커다란 탱크를 타고 마크롱 대통령이 등장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도 행사장에 있었다고는 하나 잘 눈에 띄지 않았다. 퍼레이드가 끝나는 종착지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트럼프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던 젊은 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국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한민국에 30년 가까이 살면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보지 못했는데, 프랑스 대통령을 보다니…. 나에겐 조금 신기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나는 한때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정치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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