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빵을 고르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빵들이 있고, 나는 아마 죽기전까지 그것들을 다 먹어보지 못할 것이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어떤 빵을 고를 것인가 하는 것은, 양념치킨이냐 후라이드 치킨이냐 고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고로, 우리에겐 빵 고르는 기술이 필요하다.
빵을 고를 땐 무엇보다 운과 전략이 있어야 했다. 그 사실을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무렵 알았다. 3교시가 끝나면, 우리 반으로 빵이 가득 담긴 상자가 종종 배달 왔었다.
그 안에는 학급 학생 수만큼 소보로빵과 단팥빵과 크림빵, 이렇게 3가지 빵이 적절히 섞여있었고 한 명당 한 개 빵만 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1분단에서부터 4분단까지 한 명씩 차례로 빵을 골랐다. 3가지 빵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단팥빵과 크림빵은 운에 따라서 빵 안에 있는 팥과 크림의 양이 결정된다. 팥과 크림은 많을수록 맛있지만, 운이 없을 경우 팥과 크림이 부족해서 아무 맛없는 빵 반죽을 먹어야 했다.
더군다나 열에 아홉은 팥과 크림이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에, 빵을 끝까지 맛있게 먹으려면 팥과 크림을 어떻게 분배해서 먹을지 전략을 필요했다. 전략이 있다면 어떤 빵을 골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리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전략을 세우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으므로, 내 선택은 소보로빵이었다. 단팥빵과 크림빵에 비해 단조로운 맛이지만, 빵 위에 고소한 크럼블이 고르게 붙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평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소보로빵은 여러 가지 변신을 시도했고, 나는 그 변신을 하나씩 도전하기 시작했다. 땅콩 맛 소보로빵, 생크림이 들어간 소보로빵, 튀긴 소보로빵...
그중 최고의 도전은 팥과 크림이 함께 들어있는 소보로빵이었다. 먹는 내내 운이나 전략 따위 없이도 팥과 크림과 크럼블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IT기술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빵맛 기술도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10년 후엔, 또 20년 후엔 어떤 빵이 등장할까.
나는 여전히 평범한 운을 가졌고 전략 세우기는 서툴지만, 운과 전략보다 ‘시도할 수 있는 소심한 용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이 소심한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빵식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죽기전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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