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아파트 상가 1층, 문방구 옆에 작은 빵집이 있었다. 빵집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빵집 유리창에 ‘빵’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던 것만 생생하다. 아직 프랜차이즈 빵집이 전국을 장악하기 한참 전이다. 빵집에 들어가면, 시간대가 언제든 상관없이 가지런히 진열된 빵들과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볕이 가득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주는 빵집이 좋았다.
그 빵집의 모든 빵이 맛있었지만 그중 최고는 카스테라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의 최애 빵이기도 했다. 유산지컵에 담겨 머핀처럼 동그란 모양이었는데, 봉투 하나에 카스테라가 2개씩 사이좋게 짝을 맞춰, 총 4줄이 들어있었다. 봉투를 열어 카스테라를 먹을 때면, 왠지 짝을 맞춰야 한다는 핑계로 꼭 2개씩 먹고는 했다. 짝꿍 없이 혼자 남겨진 카스테라는 외로울 테니까.
카스테라는 언제나 달고 부드러웠다. 흰 우유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은 두배가 되었다. 카스테라는 연한 노란빛이지만, 항상 그보다 짙은 색의 뚜껑을 덮고 있어서 자연스레 뚜껑 부분을 먼저 뜯어먹고 나머지 노란 부분을 먹었다. 색깔이 연하든 진하든 상관없이 같은 맛이었지만, 그렇게 먹는 편이 익숙했다. 가끔은 그 폭신한 카스테라를 양손으로 힘껏 눌러, 납작하고 밀도 높은 카스테라를 만들어 먹고는 했다. 카스테라의 달콤함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카스테라까지 다 먹고 나면, 배는 불렀으나 괜히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나를 더 먹으면 짝을 맞춰 두 개를 먹어야 하는 나만의 규칙이 있었으므로, 유산지에 묻은 카스테라 가루를 떼어먹는 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생겨나면서, 어린 시절 좋아하던 동네빵집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프랜차이즈 빵집 덕분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균일한 맛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릴 적 먹던 그 동그랗고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테라와 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언제든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내 곁에 많은 것이 변한다. 빵집 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영원할 것 같은 것들도,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변하거나 멀어지거나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 순간을 오롯이 음미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훗날 그것이 변하고 멀어지고 없어지더라도, 가능한 진하게 기억하고 마음 속에 품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