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민기 Apr 05. 2020

세상엔 빵을 고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빵생각 - 김민기 쓰고 그림


세상에는 빵을 고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빵에 대한 그림과 문장을 쓰는 나 역시, 고기보다 빵이 좋다. 맹세코 삼겹살이 땡긴 적은 없지만, 크로와상이 먹고 싶은 날은 수없이 많았다.

맛있는 빵을 매일 아침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토피염이 있어서 빵을 자주 먹지 못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먹었다가는 얼굴과 목과 팔다리가 온통 붉게 부어오르고 가려울 것이다. 빵에 들어가는 어떤 성분이 나의 몸과 맞지 않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빵을 포기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먹으며 심심한 위로를 할 뿐이다. 어쩌면 아토피염이라는 장애물이 빵에 대한 애정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장애물이 있으면 더 열렬해지는 법이니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갓 구운 빵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빵에 대한 행복은 빵집으로 가는 발걸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아주아주 신중한 사람이 된다. 아토피염의 가려움과 맞바꾸는 빵을 허투루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한 손에는 트레이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쥐고 빵 진열대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내가 가장 먹고 싶은 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온 신경을 마음에 집중한다. 빵 고르는 일이 거의 명상과도 같은 일이다.

이렇게 고른 빵은 가능한 가장 맛있게 먹고 싶다. 주로 아침시간에 먹는 것을 택하는데, 아침시간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침시간을 잘 보내면 분명 남은 하루도 순탄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고, 그것이 빵과 함께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빵이 준비된 아침엔 알람 소리가 없어도 눈이 떠진다. 침대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의 빵을 꺼내는 일이다. 빵이 오븐 샤워를 하는 동안 좋아하는 접시를 꺼내고 커피를 내린다. 기분에 따라 핸드드립을 하거나 커피머신을 이용한다. 향긋한 커피와 따뜻한 빵까지 준비되면, 그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의례적으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자, 이제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근심과 걱정을 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다.

접시에 빵 부스러기만 남을 때쯤, 다음 주엔 어떤 빵을 먹을까 다시 빵 생각을 한다. 기다림에 비해 먹는 시간이 너무 짧고, 아토피염 연고를 준비해야 하는 위태로운 행복이지만, 오늘도 빵 생각을 한다. 다사다난한 인생에 5천 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꽤 든든하다.








<오늘도 빵생각>은 빵 먹기 좋은 일요일 아침에 연재됩니다.

https://www.instagram.com/kimminkiki/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