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이 다 망쳐놨어.
나는 정말 썸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솔직히 증오한다.
Something(썸씽)의 줄임말인 '썸'은, 두 사람이 연인 관계가 되기 직전까지 겪는 모든 일을 통칭하는 듯 한데- 그러니까, 그때 겪는 묘한 기류, 두근거림, 혹은 서로의 감정에 대해 아리까리하게 느끼는 것까지 전부 썸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기에 썸이 유사연애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전에, 우선 연애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는데, 아따, 시대에 발 맞춰 사람이라고 고칩시다. 국어사전 뜻 받고, 내가 생각하는 연애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역시 이 경우 모노아모리- 1:1 연애를 기준으로) 서로가 연인임을 선언하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비로소 성립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그러니까 이 선언을 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건 썸이라고 퉁을 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전에는 다들 어떻게 살았는지들 모르겠다.
문제는, 이 썸은 실제 연애의 묘미를 확실히 반감시킨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썸'을 탈때 느끼는 달콤하고 짜릿한 감정은 원래 연애 중에 느껴야하는 것 아닌가? 예전 같았으면 연애를 하고서나 했을 법한 행동들- 손잡기, 뽀뽀하기, 심지어는 섹스까지-썸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간다지 않던가! 아니, 세상이 이리도 바뀌었단 말이냐! (날 유교맨이라고 칭해도 좋다!) 그럼 도대체 연애를 하면서는 뭘하려고?
솔직히 나는 맛보기 스푼 하나 달라고 하면 그냥 밥숟가락으로 쥐어주는 사람이다. 맛에 자신 있으니까 그걸로 밀고 가는 것일 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앞의 문단과는 다소 모순되지만) 나는 섹스를 하고 사귀었으면 사귀었지 데이트만 세번 이상하고 사귄 경우는 아예 없다.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잘 해야한다고들 하는데, 아니, 뭐 해봐야. 어차피 연애하면 다 드러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상대방은 계속 썸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하고. 아니 뭐,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라서 그럴 수도 있죠. 있는데, 그냥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그냥 연애하면서 알아가면 되지 않나? 썸의 묘미고 나발이고- 왜 떠봐, 떠보기는. 내가 수제비야?
게다가 그런 점을 악용해서 사귈 듯 말듯, 아니 연애를 할 때만 할 법한 행동은 죄다 해놓고, 막상 상대쪽에서 관계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면 "썸"이라는 단어로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들, 별로다. 진짜 별로다. (게다가 썸 좋아하는 사람치고 어장관리 안하는 사람 못 봤다.)
결국 썸이란, 자기 감정에 책임을 지기가 싫어 자신을 감추는 행위가 아닐까 한다. '진짜', 그러니까 '사랑'을 경험하기가 무서운 사람들이 하는 비겁한 행동말이다.
물론 요즘 동년배들이 썸을 타는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흉흉하지, 일은 바쁘지, 살기는 팍팍하지 게다가 연애만큼 누군가와 긴밀하게 연결 되는 행위는 없으니까. 그 과정에서 손해 보기 싫으니까, 상처 받기 싫으니까.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간이나 보고 깔짝 거리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깊게 빠지지 않으면 깊게 상처 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 연약한 영혼이니까, 그런 마음 자체를 욕할 수야 없지, 암.
하지만 사람은 진짜를 경험하고 나야만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진짜 연애, 진짜 사랑을 해야 성장한다. 썸이라는 이름으로 잠깐의 옥시토신(행복물질) 분비를 맛보아봤자, 그것은 금방 끝난다. 그럼 돌아오는 것은 허무감 뿐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마음 먹고 하는 행동에는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게 분명히 돌아온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나를 성장시킨다. (무엇이 진짜냐고? 그건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저랑 연애 할 거에요, 말 거에요?
우리 연애 합시다. 썸 말구요.